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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동(仁寺洞) 거리
    국내 나들이/길거리에서 2022. 2. 15. 20:12

    안국동 사거리

     
     
     

    인사동 조형물, ‘일획(一劃)을 긋다.’

     

    서울 인사동 북측 입구에 설치된 작품명 '일획을 긋다'는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거대한 전통 붓이 하늘에서 떨어져

    마치 이곳을 점지하듯이 원형의 획을 긋고 있는 형상으로

    '문(文)', '예(藝)', '서(書)', '화(畵)'가 어우러져 '핵(刻)'을 이루는 형상이며

    문화적, 예술적 요소들이 어울려 새로운 공간을 이루고 있는 모습으로

    과거에서 현대, 그리고 미래로 이어질 인사동의 모습을 지녔다.

    작품은 높이 약 7m, 지름 1.4m의 먹물을 흠뻑 머금은 검은색의 붓 모양으로

    서울의 중심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의 거리로 활력 있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인사동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했다.

    또한 석재기단은 시민 등 관광객이 잠시 쉴 수 있는 벤치(bench) 기능도 있다.

    조형물 가운데에는 “大韓民國傳統文化中心仁寺洞(대한민국전통문화중심인사동)”

    글씨가 세로로 부각(浮刻)되어 있다.

    작가 : 윤영석, 제작연도 : 2007년

     
     
     
     

    인사동길 입구

     
     
     

    인사동길 뒷골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천도교 중앙대교당(天道敎 中央大敎堂)

     

    이 건물은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주관 하에 1918년에 시공하여 1921년에 완공한

    천도교의 교당이다. 이곳에서는 천도교의 종교의식 외에 각종 정치집회. 예술공연. 강연회 등

    일반 행사를 개최하였는데, 당시 이 건물은 비교적 높고 웅장하여

    명동성당, 조선총독부 건물과 더불어 서울시내 3대 건축물로 꼽혔다.

    3.1 운동을 전후하여 지어졌기 때문에 천도교의 보국안민(輔國安民) 기치를 상징하게 되었다.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대교당 건축이란 명분을 앞세워 1918년 4월 건축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이듬해에 천도교가 3.1 운동 중심 단체로 활동하면서 건축비를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공사가 늦어졌다.

    이 건물은 붉은 벽돌을 주재료로 하고 화강석을 섞어 써, 색과 재질감의 조화가 뛰어나며,

    한국의 근대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젯세션(Secession, 분리파) 양식의 건축이다.

    이는 일본인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興資平)가 독일인 건축가 안톤 페러를 직원으로 채용함으로써

    독일의 건축사조(建築思潮)를 접한 데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1.2층의 날개 부분에는 사무실이 있었다.

    건물의 몸체는 내부 기둥이 없는 강당 형식의 대집회실로 되어 있는데,

    이는 상당히 큰 폭의 공간을 덮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구조적 해결방법이 적용된 것이다.

    일본인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했으며, 중국인 장시영(張時英)이 시공하였다.

    화강석 기초에 적벽돌의 조적조 건물인데 내부는 기둥이 없는 큰 강당형 교회당과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형태의 정면 탑, 배달민족을 상징하는 박달나무 꽃과 무궁화 장식문양의 유리창 등

    전혀 다른 느낌을 지니고 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57 (경운동)

     

     
     
     

    독립선언문 배부터(獨立宣言文 配付址)

    3.1 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천도교 대표 등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검토 배부하던 곳

     
     
     
     

    독립선언서 배포 터(獨立宣言書 配布 址)

     

    인류 평등의 큰 뜻과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선언한 '선언서'에 담긴 가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에서부터 오늘날 헌법 전문에 이르기까지 머리글로 새겨 계승되어 왔습니다.

    3.1 독립선언서(기미독립선언서)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보성사(천도교 경영,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찍어낸 뒤 신축 중이던 천도교 대교당 마당에 갈무리해두었다가

    종교계, 학생 대표들에게 미리 나누어 주었습니다.

     

     

    삼일대로(三一大路)

     

    3.1 운동은 삼일대로 일대에서 처음 시작하여 팔도(八道)로, 해외로 퍼져나갔습니다.

    1919년(기미년) 만세운동을 통해 한국인은 새로 태어났습니다.

    서울특별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겨레의 거룩한 용기와 희생, 인류평화와 독립을 외친 뜻을

    기리고 또 현재화하기 위해 삼일대로를 새로 닦고 3천여 시민이 참여한 시민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사포서터(司圃署址)

     

    사포서는 궁중의 채소밭과 과수원을 관리하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1466년(세조 12) 전에 있던 침장고(沈藏庫)를 사포서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6품아문이며, 관원으로 제조(提調) 1명, 사포(司圃) 1명, 별제(別提) 2명, 별검(別檢) 2명과

    이속(吏屬)으로 서원(書員) 5명, 고직(庫直) 1명, 사령(使令) 5명을 두었다.

    원래 북부 준수방(俊秀坊 : 종로구 통인동)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고종 19년(1882년)에 폐지되었다.

     

     

     
     

    서울지방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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