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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암 종손댁(巍巖 宗孫宅)과 이간 사당(李柬 祠堂)
    국내 나들이/민속촌(民俗村) 2022. 3. 13. 21:13

    외암 종손 댁(巍巖 宗孫宅) - 목조, 조선 후기

     

    이 집은 외암 이간(李柬) 선생의 종손이 살고 있어 종손 댁이라 불린다.

    안채는 ‘ㄱ’자 모양으로 중앙에 2칸의 대청마루가 있고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있다.

    오른쪽의 건넌방 앞에는 들마루를 내었고, 들마루 밑에 온돌용 아궁이가 있다.

    안채 남쪽에 ‘ㅣ’자 모양의 문간채를 배치하였으며 대문 앞에 외암 사당(祠堂)이 있다.

     
     
     
     

    외암 이간 사당(巍巖 李柬 祠堂)

     

    이간(李柬, 1677~1727) 선생의 자(字)는 공거(公擧), 호(號)는 외암(巍巖) 또는 추월헌(秋月軒),

    본관(本貫)은 예안(禮安)으로 입향조(入鄕組) 이사종(李嗣宗)의 6세손이다.

    선생은 숙종조(肅宗祖, 1716)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자의(咨議),

    영조 즉위 1년 동안에는 회덕현감, 경연관(經筵官)을 잠시 지냈다.

    정조 때 이조참판, 성균관 좨주(成均館祭酒), 순조 때에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고

    불천위(不遷位)에 제수(除授)되었다.

    증호(贈號)는 문정공(文正公)으로 외암서원(巍巖書院)에 신주(神主)가 모셔졌다.

    선생은 율곡(栗谷)을 태두로 하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이름난 성리학자로

    수암(遂菴) 문하의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으뜸이었다.

    선생의 독창적인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은 융화적(融和的) 세계관,

    이신론적(理神論的) 가치관을 바탕으로 체계화한 보통주의적 철학사상이다.

    그의 인물성동론이 조선 후기 최대 학술 논쟁인 호락논변(湖洛論辨)의 실마리가 되었으므로

    스스로 낙론계(洛論系)의 선봉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의 인물성동론은 후속되는 인물균론(人物均論), 인물막변론(人物莫辨論)으로 발전하여

    북학파 형성에 영향을 주게 되었으며,

    조선 후기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에 통치 이념으로 변화되어

    소인 교화론(小人敎化論), 탕평론(蕩平論), 서얼 소통론(庶孼疏通論) 등

    혁파 논리의 기조가 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55 (외암리) 외암리민속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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