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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주사씨(靑州史氏) - 대전 뿌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3. 23. 04:06

    청주사씨 유래

     

    청주사씨(靑州史氏)는 중국 산동성 청주 사람인 사요(史繇)를 시조로 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산둥성 청주를 관향으로 삼는 한국의 성씨이다.

    동방의 사(史)씨는 연원이 유구하고 찬란하며

    파주에 이거 정착한 이래 전국에 걸쳐 그 후손이 번창하다.

    그 태생는 한자를 창제한 사황(史皇 : 창힐)이었으며,

    후대에 주나라 초 사관이었던 사일(史佚)이 관직으로 성을 받아 시조가 되었다.

    명대에 이르러 산동 청주의 요(繇)가 태조의 개국공신으로 예부상서에 올랐으나

    소인배의 참소로 조선에 귀화하여 파주에서 가문을 열고 청주사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상서공의 장남 중(重)은 공을 따라 조선에서 가문을 확립하였고,

    직(直)은 명나라에 남아 가맥을 이었다.

    중(重)은 인조대에 병조판서에 추서 되었고,

    그 아들 극명(克明)은 장례원 판결사로 의담(義淡)과 의청(義淸)을 두었다.

    의담(義淡)은 평택현감으로 사헌부 감찰 득손(得孫)을 두었으니

    그 아래 통사랑 종(宗)이 도사 기린(麒麟)과 한성주부 학수(鶴壽),

    공조참의 원훈(遠勳)과 정현대부 인필(寅必)을 두었고,

    의청(義淸)은 경손(敬孫), 연(蓮), 경현(敬賢)을 둠으로써

    자손이 번성하여 여러 파로 퍼져 나갔다.

    한편 직은 한림시강으로 한청(汗靑)을 그 후손으로

    담(談), 학명(學明), 양(良), 병문(秉文) 유(儒)로 대를 이었으며

    유는 임진왜란 때 동원 유격대장군으로 평양 왜전에서 대공을 세웠고,

    그 아들 세용(世用)은 정유재란 때 동원군의 경략참모군사지휘로서 공을 세우고,

    귀화 정착하였으니 그 아래 대제학 원성(元成)과 문사 탁(琢)을 거치면서 후손들이 번창하였다.

    그로부터 청주사씨는 파주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건재하여 번성을 누리고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 79 (침산동) 대전 뿌리공원

     

     
     
     

    청주사씨 조형물

     

    작품명 : 화평과 번영

    조각가 : 배정문

     

    조형물은 작품의 사씨 문중의 종장(宗章)을 바탕으로

    전체의 갈색 원형은 천지(天地)의 조화를 표상하고

    둘레의 청색(靑色) 모양은 사방(四方)의 지평(知平)한 청주사씨(靑州史氏)를 상징한다.

    한가운데 황금색 문양은 ‘사(史)’의 표시로서 한국 사씨의 유구한 전통과

    찬란한 번영을 기약하는 날개짓을 상징한다.

    조형물 중심부 ‘사’자의 조형적으로 힘차게 상승하는 모습으로

    문무를 갈고 닦아 가문을 빛낸 선조의 넋을 기리고자 한다.

    중심부 좌측에는 책에 모양을 조각하여 선비와 문무 문중임을 강조하고

    선조들의 업적을 본받아 후손들이 더 나은 미래로의 번영을 이룩하고자 함이다.

    청주사씨 전국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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