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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차천로 선생 문학비(五山 車天輅 先生 文學碑)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2. 3. 27. 20:07
오산 차천로 선생 문학비
경기도 과천시 과천중앙공원 내 지하철 4호선 과천역 5번 출구 인근에는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차천로(車天輅) 선생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경기도 과천시 도서관길 36 (별양동) 경기과천교육도서관
五山 車天輅 先生 文學碑(오산 차천로 선생 문학비)
평생아재(平生我才) 쓸데없어
세상공명(世上功名) 하직하고
상산풍경(商山風景) 바라보며
사호유적(四皓遺跡) 따로리라
인간부귀(人間富貴) 절로두고
물외연하(物外煙霞) 흥을겨워
만학송림(萬壑松林) 수풀속에
초옥수간(草屋數間) 지어두고
청라연월(靑蘿烟月) 대사립의
백운심처(白雲深處) 닫아두니
적적송림(寂寂松林) 개짖은들
요요만학(寥寥滿壑) 제뉘알리
- 강촌별곡의 머릿부분 -
江村別曲(강촌별곡)
평생아재(平生我才) 슬데 업셔, 세상공명(世上功名) 하직(下直)하고,
상산풍경(商山風景) 바라보며, 사호유적(四皓遺跡) 따로리라.
인간부귀(人間富貴) 절노 두고, 물외연하(物外煙霞) 흥(興)을 겨워
만학송림(萬壑松林) 수풀 속에, 초옥수간(草屋數間) 지어두고
청라연월(靑蘿烟月) 대사립의, 백운심처(白雲深處) 닫다두니
적적송림(寂寂松林) 개 짖은 들, 요요만학(寥寥滿壑) 제 뉘 알리
송책자지(松柵紫芝) 노래하고, 석전춘우(石田春雨) 밭을 가니
당우천지(唐虞天地) 이 아닌가, 갈천민맹(葛天民氓) 나뿐이라
고거사마(高車駟馬) 뜻이 없고, 명산가수(名山佳水) 벽이니
요산요수(樂山樂水) 하는 곳에, 의인의지(宜人宜知) 하오리다
등고서소(登高舒嘯) 금일하고, 임류부시(臨流賦詩) 내일하고
구승갈포(九升葛布) 몸에 입고, 삼절죽장(三節竹杖) 손에 쥐고
조래벽계(朝來碧溪) 경 좋은데, 주향송림(晝向松林) 한민하다
조채산미(朝採山薇) 아적 먹고, 석조강어(夕釣江魚) 저녁 먹세
수곡산가(數曲山歌) 파한 후에, 일엽어정(一葉漁艇) 흘리저어
장장여사(長丈餘絲) 한낚대를, 낙조강호(落照江湖) 빗겼으니
구맥홍진(九陌紅盡) 마친 기별, 일간어옹(一竿漁翁) 내 알소냐
범류창파(泛流滄波) 이내 흉을, 요요진세(擾擾塵世) 제 뉘 알리
은린옥척(銀鱗玉尺) 뛰 노는데, 야수강천(野水江天) 한빛이라
거구세린(巨口細鱗) 낚아내니, 송강로어(淞江鱸魚) 비길소냐
봉창노저(蓬窓蘆底) 낚대걸고, 일모연저(日暮烟渚) 배를 돌려
십리사정(十里沙汀) 올라오니, 백구비거(白鷗飛去) 뿐이로다
주박모주(舟泊暮洲) 하여두고, 망혜완보(芒鞋緩步) 돌아드니
남북산촌(南北山村) 두세 집이, 낙하연청(落霞烟靑) 잠겼세라
금서소일(琴書消日) 하는 곳에, 청주준영(淸酒樽盈) 하였으니
장가단곡(長歌短曲) 두세 사람, 일배일배(一杯一杯) 다시 부어
퇴연옥산(頹然玉山) 취한 후에, 석두한면(石頭閑眠) 잠을 들어
학루일성(鶴淚一聲) 깨달으니, 계월삼경(溪月三更) 밝힐세라
생애담박(生涯淡泊) 내 즐기니, 부귀공명(富貴功名) 부러하랴
천추만세(千秋萬歲) 억만재(億萬載)에 이리저리 하오리라
차천로[車天輅, 1556(명종 11)∼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송도(松都, 개성) 출신, 자는 복원(復元),
호는 오산(五山)·귤실(橘室)·청묘거사(淸妙居士). 본관은 연안(延安).
고려의 간의대부(諫議大夫) 원부(原琅)의 6대손이며,
계생(繼生)이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광운(廣運)이다.
아버지는 식(軾)이며, 어머니는 이계천(李繼天)의 딸이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개성교수(開城敎授)를 지냈고,
1583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6년 정자(正字)로서 고향 사람 여계선(呂繼先)이 과거를 볼 때
표문(表文)을 대신 지어주어 장원급제시킨 일이 발각되어 명천에 유배되었다가
1588년 문재가 있어 용서되었다.
1589년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으며,
그때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었으나 4,000~5,000수의 시를 지어 일인들을 놀라게 했다.
명(明)나라에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담당할 만큼 문장이 뛰어나
명나라로부터 동방문사(東方文士)라는 칭호를 받았다.
특히 시에 능하여 한호(韓濩)의 글씨, 최립의 문장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일컬어졌다.
저서로 오산집(五山集) 오산설림(五山設林), 작품으로 강촌별곡(江村別曲) 등이 있다.
강촌별곡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자연 속에 묻혀 산수간에 은거하면서
안빈한적(安貧閒適)하는 생활을 노래한 것으로,
한 구의 앞쪽이 일률적으로 네 자의 한문구(漢文句)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낙빈가(樂貧歌) 계열의 작품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을 가미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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