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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회동 백인제 가옥(嘉會洞 白麟濟 家屋) -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3. 26. 21:07

    백인제 가옥(白麟濟家屋)

     
     
     
     

    높다란 대문간채


    대문간채는 조선 사대부가의 솟을대문 형식을 그대로 채용했으며,

    전통 한옥의 격조 높은 대문을 연상시킨다.

     
     
     
     

    백인제 가옥 역사

     

    백인제 가옥은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건립한 이래

    한성은행, 최선익 등을 거쳐 1944년 백인제 선생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습니다.

    한성은행이 소유했던 시절에는 천도교 단체가 가옥을 임차하여

    지방에서 상경한 교도들의 숙소 겸 회합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소유자인 최선익은 개성 출신의 청년 부호로, 1932년 27세의 나이로

    조선중앙일보를 인수하여 민족운동가인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 언론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1944년 이후에는 당시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였던 백인제 선생과 그 가족이 소유하였으며,

    건축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9년 서울특별시에서 인수 후 문화재 개·보수 공사를 거쳐,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시·체험 공간으로 조성하여

    2015. 11. 18 역사가옥박물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백인제 가옥의 주인들

     

    ▶ 1913년 7월 3일 : 완공 후 한상룡(韓相龍, 1880~1947) 거주

    ▶ 1928년 6월 29일 : 한성은행 소유권 이전

    ▶ 1935년 1월 29일 : 최선익(崔善益, 1905~?, (언론인)으로 소유권 이전

    ▶ 1944년 9월 1일 : 백인제(白麟濟, 1898~?, 백병원 설립자)로 소유권 이전

    ▶ 1968년 최경진(崔炅珍, 1908~2011) 소유권 이전

    ▶ 1977년 3월 17일 :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 지정

    ▶ 2009년 11월 30일 : 서울특별시로 소유권 이전

    ▶ 2015년 11월 18일 : 역사가옥박물관으로 개관(일반 공개)

     

     
     
     

    넉넉한 안채


    안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서울의 넉넉한 근대 한옥 모습을 보여주며,

    백인제 가옥의 가족들이 주로 생활했던 공간이다.

     
     
     
     

    안방

     

    안방은 집안의 안주인이 거처하는 장소로서, 한옥 중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다.

    집안 이외의 남자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안방은 안주인의 권위를 상징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넘기면서

    안살림을 물려줄 때는 방도 서로 바꾸게 되는데 이를 '안방 물림'이라고 한다.

     
     
     
     

    안채 내부(대청)

     

    이 공간은 안채 대청이다. 발밑에 깔려 있는 마루는 우물 정(井) 자를 닮았다고 해서

    우물마루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전통 마루 형식이다.

    천정을 보면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연등 천정의 모습을 하고 있어 지붕의 구조를 잘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1977년 문화재 지정을 위한 조사 당시에는 우물천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백인제 가옥 안채 주련

     

    取北村家勤潤屋(취북촌가근윤옥) 북녘에 촌가를 취하여 가옥 치장 부지런하였고

    造南花苑勉看英(조남화원면간영) 남녘에 화원을 만들어 꽃 보는 것을 힘썼노라

    高當父母千年壽(고당부모천년수) 고당의 부모님께서는 천년토록 수를 하시고

    下室兒孫萬世榮(하실아손만세영) 하실의 아손들은 만세토록 영화를 누리리라

    日光滿室當無暗(일광만실당무암) 햇볕이 방에 가득하니 당연히 어둠이 없고
    瑞氣盈門必有融(서기영문필유융) 서기가 문에 가득하니 반드시 융화가 있으리라

    屋富佳光階自得(옥부가광계자득) 집이 부유하니 가광은 다 스스로 얻게 되고

    儒賢厚德與人同(유현후덕여인동) 선비가 어지니 후덕을 남과 더불어 같이 하네

     

     
     
     

    할머니방

     

    안살림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난 할머니가 기거하는 방으로 ㄱ자로 꺾인 안채의 끝에 위치한다.

    문 앞에 별도의 작은 대청을 두어 할머니가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였다.

    안방에서 복도로 연결되지만 중간에 양식문이 있어 안방 영역과는 분리된다.

     
     
     
     

    안채 마당

     

    안채는 안주인과 가족들의 생활을 위한 공간이다.

    외부인들의 출입이 엄금되어 있던 곳이니 만큼 안채 마당은 ㅁ자형의 폐쇄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가족들의 생활공간이므로 부속채와 중문채가 안채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하공간 – 지하방공호(地下防空壕)

     

    중문채 옆쪽 바닥에는 검은 철판이 덮여있다.

    아래로는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지하 방공호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1940년대가 되면 세계 2차 대전의 위험이 크게 부각되면서

    서울 일대에 방공호 조성이 성행하게 되므로 그 시기에 조성된 것이라 추정된다.

     
     
     
     

    부엌

     

    한옥의 부엌은 특유의 온돌문화로 인해 취사 기능과 난방기능을 겸한다.

    안방 쪽으로 부뚜막을 만들어 여기에 솥을 달고 불을 때

    음식도 만들고 동시에 난방의 기능도 함께 한다.

    부엌 마당은 지표면보다 낮고 대개 흙바닥이다.

    옆쪽으로 부엌 살림살이를 수납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찬방이 위치한다.

     

     
     
     

     

    별당

     

    별당채는 백인제 가옥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별당 주련(別堂 柱聯)

     

    별당 주련의 시(詩)는 보다 서정적이고 선비의 뜻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春暖花飛越岸紅(춘난화비월안홍) 봄이 따뜻하고 꽃이 날리니 언덕을 넘어서 붉도다

    風淸水靜當門轉(풍청수정당문전) 바람 맑고 물이 고요한데 문에 당하여 돌아가네

    竹報平安萬里聽 (죽보평안만리청) 대나무 평안을 알리니 만리까지 귀 밝게 들리네

    花開富貴千秋馥(화개부귀천추복) 꽃같이 부귀가 열리니 천주에 향기롭고

    吉家和氣滿門楯(길가화기만문순) 길한 집에는 화기가 문안에 가득하고

    處世無奇但義忠(처세무기단의충) 세상에 처함이 기묘가 없으니 다만 의와 충이로다

    傳家有道惟仁孝(전가유도유인효) 가문에 전함이 도가 있으니 오직 인과 효요

    巨擘高名振帝宮(거벽고명진제궁) 큰 선비는 높은 이름이 대궐에 떨치도다

     

     

     

     

    건넌방

     

    주로 며느리가 기거하는 방으로 안방과는 대청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위치한다.

    뒤뜰 쪽으로 누마루를 만들어 여름에 시원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랑채의 작은 사랑방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당당한 사랑채


    사랑채는 북촌의 높은 대지에 위치해 있으며,

    건립 당시부터 한상룡을 비롯한 여러 소유자들이 사회적 활동의 배경으로 삼았다.

     
     
     
     

    사랑방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방으로 손님을 맞이하거나 서재의 기능을 함께 하였던 방이다.

    널찍한 대청이 있는 사랑방은 많은 손님을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어서 주인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준다.

    방의 4면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 독특한 구조이며

    사랑 대청은 전통적인 한옥의 우물마루 대신 장마루를 깔았다.

     
     
     
     

    작은 사랑방

     

    아들이 거주하는 방이다.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 남쪽에 위치해 있다.

    전통적인 한옥에서는 사랑 대청을 사이에 두고 사랑방과 마주 보며 위치하지만

    이 가옥에서는 사랑방 뒤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보다 독립적인 공간을 구성한다.

     
     
     
     

    사랑채 정원

     

    사랑채는 백인제 가옥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사랑채와 사랑채 정원의 면적이 가옥 총면적의 절반을 차지한다.

    집주인이 사교활동을 위해 이렇게 큰 규모로 건축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嘉會洞 白麟濟 家屋) -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북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백인제 가옥은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에 의해 1913년에 건립되었다.

    주변 가옥 12채를 사들여 마련한 907평의 큰 대지에

    압록강 흑송(黑松)을 자재로 이용하여 건축하였다고 전한다.

    사랑채와 안채가 확연히 분리되는 전통 한옥과 달리 안채와 사랑채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당시의 한옥에서는 그 예가 거의 없는 2층 공간도 지었다.

    본채 전체 영역에 유리문을 달았고 사랑채 앞으로 넓은 정원을 조성한 것도

    한옥에 적용한 근대적인 요소이다.

    사랑채 뒤쪽으로 난 아름다운 오솔길을 오르면 휴식공간인 별당채에 이른다.

    본 가옥의 마지막 소유주로서 1944년부터 거주하였던

    외과의사 백인제 박사의 이름을 따서 문화재 명칭이 부여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7길 16 (가회동) 문의 02-724-023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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