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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옥 열사 상(金相玉 烈士 像)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2. 4. 1. 19:14

    김상옥 열사의 상(金相玉 烈士의 像)

     

    나라와 겨레가
    왜적에 짓밟혀
    비굴한 삶을 잇느니
    장렬한 의거로 죽음을 택한
    대한인 김상옥 열사
    애국의 횃불이 여기
    영원히 타고 있다.

    적의 심장부에 폭탄을 던지고
    떼 지은 왜경과 싸우고 또 싸우다
    아아 내 조국이여 외쳐 부르며
    최후의 일발로 자결 순절하신
    거룩한 님의 의거 터에
    그 모습을 새겨 세워
    높은 공을 기린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한지 김상옥 열사 약력

     

    본관 : 김해, 안경공 15대손, 아호 : 한지(漢志)

     

    1890. 1 서울 어의동에서 구한말의 군관인 김규현과 경주 김씨 점순 여사 사이에 2남으로 출생

    1909 한문을 수학하고 불우청소년을 위해 동흥야학(東興夜學)을 설립

    1911 YMCA(기독교청년회) 청년부장으로 활동

    ​1913 경북 풍기에서 채기중, 염창순, 한훈 등과 광복단 조직

    1916 한훈, 유장열 등과 친일반역자를 오성헌병소를 습격, 무기를 탈취

    1917 신형 말총모자를 창안 보급하고 각종 면직, 철공류를 생산하여 국산품 장려운동 전개

    1919 3.1 운동이 일어나자 시위대열에 앞장서 무장경관의 장검을 빼앗는 등 담대한 활동을 감행,

           그 뒤 영국인 피어슨 여사 댁에서 혁신단과 암살단을 조직, 혁신공보를 발행

    1920 총독 주살 계획을 추진하다 실패하자 상해로 망명, 의열단에 가입

    1921 임정 요인들과 군자금 모금계획을 의논하고 귀국, 평양과 충청, 전라도 등지를 순회 모금하여

            상해로 돌아가 임시정부에 전달

    1922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의열단의 지원 아래 폭탄 등 무기를 휴대하고 안흥한과 함께 귀국

    1923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왜경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1월 17일 재등총독 주살을 재차

            계획한 채 삼판통에서 추격한 왜경과 총격전을 전개한 후 이곳저곳을 신출귀몰하다가

            1월 22일 종로 효제동에서 왜경 500여 명에게 포위되어 4, 5채 가옥을 넘나들며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일기당전의 장렬한 격전을 전개,

            수십 명의 왜경을 살상 후 마지막 한 발로 자결 순국

    1962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이 추서 됨.

     
     
     
     

    의거를 결심하고 남긴 말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 만나 봅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 상해를 떠나며 동지들에게 -

     
     
     
     

    김상옥 열사 관련 언론 내용 - 獨立新聞(독립신문)

     
     
     
     

    김상옥 열사 관련 언론 내용 - 朝鮮日報(조선일보)

     
     
     
     

    김상옥 열사 관련 언론 내용 - 東亞日報(동아일보)

    왜경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김상옥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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