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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천조씨(白川趙氏) - 대전 효월드 뿌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4. 12. 04:10

    배천조씨 상징 조형물

     

    작품명 : 화합(和合)

    작가 : 조인혁

     

    본 작품은 순수 창작 작품으로 조각의 여러 장르 중 반구상 계열의 작품이다.

    부부가 하나 되어 화합하고 번영하는 형상으로 조각하였고,

    좌대 양 옆은 손으로 선조를 떠 받치는 형상으로 디자인하였다.
    배천조씨(川趙氏) 얼이라 할 수 있는 충(忠) 효(孝) 진(眞) 정신을 겸비하여

    자손만대에 새겨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충(忠), 효(孝), 진(真)

     

     

     

     

    배천조씨(白川趙氏) 유래

     

    배천조씨(白川趙氏)의 시조는 지린(之遴)공이며

    고려 금자광록대부 좌복야 참지정사를 지낸 공화공이다.

    공은 송태조 조광윤의 손자로 궁중 권력 다툼을 피하여 서기 979년 고려 경종 4년

    황해도 배천(白川)에 정착하였고 2世 배천군 양 유공 때 본관을 배천으로 삼았다.

    문정공 선정, 강회공 중장과 대제학 문성공 옥은 평란공신, 충무공 문주는 정국공신,

    부원군 정헌공 오는 위사공신, 문하시중 경렬공 진, 문간공 자룡과 충현공 천주,

    문충공 공(珙), 원봉은 호국 위민하였다.

    강회공 충무공 정헌공은 왕묘정에 배향되었다. - 송사(宋史), 고려사(高麗史)


    숙위공 반(胖)은 조선국의 주청사로 명국과 국교를 정상화하였고,

    강소공 림(琳) 충위공 기(琦)와 함께 개국공신이다.

    대제학 문정공 용과 서로 서강 서안은 도승지 승지로 세종을 도왔다.

    유후공 휴, 판윤공 원희, 도승지 완벽,

    병조판서 정호공과 청백리 양관대제학 문효공 석윤은 위민하였다.

    중봉 헌(憲)은 유학자로 임진왜란에 거병하여 청주를 되찾고,

    금산전투에서 칠백 의병, 아들 완기, 종친 경남과 함께 순국한 자리가

    성역 칠백의총(七百義塜)이다.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지금도 시조 공화공은 주형대암 소금더미 지명을,

    복흥군 반(胖)은 군림교·어수정·속명사·가정지를 남겼다.

    공과 부인의 영정은 고려말 조선초 사대부의 표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장된 불천위다.

    중봉 헌(憲)은 호국 위민 충절을 몸소 실천한 사표로 문묘에 배향되고 영의정에 추존되었으며,

    중봉로 중봉집 격문 상소문도 있다.

    배천 조마리아 여사는 옥중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일제에 목숨을 구걸 말라’함은

    천년을 이어온 배천조씨의 ‘호국위민 충효정신'이다.

    이 숭고한 배천조씨의 얼 충(忠), 효(孝), 진(真)은 우리 후손의 영원한 삶의 지표이다.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 47 (안영동) 중구 효문화마을관리원 뿌리공원 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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