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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의 묘(大韓民國 初代 國務總理 李範奭 墓)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22. 6. 16. 19:05

    국무총리 이범석의 묘

    배위 김마리아

    묘역 : 국립서울현충원 제2유공자묘역 1

     
     
     
     

    이범석(李範奭, 1900~1972)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철기(鐵驥). 다른 이름으로 인남(麟男), 철기(哲琦) 등을 사용했다.

    서울 출신. 아버지는 이문하(李文夏)이며, 어머니는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다.

    8세 때 김해 김씨를 새어머니로 맞이하였다.

     

    1910년 사립 장훈학교(長薰學校)에 들어갔고,

    1913년 이천공립보통학교를 거쳐서 경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 여운형(呂運亨)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1916년 항저우체육학교(杭州體育學校)에서

    6개월간 수학하였으며, 원난강무학교(雲南講武學校)를 수석으로 졸업하자

    구대장 서가기(徐家驥)가 자기의 기(驥)에 철(鐵)을 덧붙여 ‘철기’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그 뒤 건해자(乾海子) 기병연대 견습사관이 되었으며, 1919년 신흥무관학교 교관,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교관, 1920년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 교수부장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청산리대첩에서 제2제대(第二梯隊) 지휘관으로 활약하였고,

    1923년에는 김규식(金圭植) 등과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을 창설하여 기병대장을 맡았다.

    1925년에는 소련합동민족군의 수분지구(綏芬地區) 지휘관으로서 소련혁명전에 참가하였으며,

    그 뒤 중국항일군의 흑룡강성군(黑龍江省軍) 작전과장, 중국군 유럽군사시찰단원을 역임하였고,

    1934년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 한적군관대장(韓籍軍官隊長)을 지냈다.

    중국 육군 제3로군 참의급(參議級) 고급참모(중국군 소장), 중국군 제3집단군 55군 군단참모처장,

    1940년에는 중국군 중앙훈련단 중대장을 거쳤다.

    1940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한 뒤에는 제2지대장으로서

    미국군과 합동작전에 참가하였고, 1945년에는 광복군의 참모장(중장)이 되었다.

    1945년 8월 18일에는 광복군 정진대(挺進隊)의 일원으로 장준하(張俊河)·노능서(魯能瑞) 등과 함께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했으나 일본군의 입국 거부로 다음날 중국으로 다시 돌아간 일도 있었으며,

    1946년 6월 정식으로 환국하였다.

    1946년 10월에는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 비정치·비군사를 내걸고 국가지상·민족지상의 청년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주위로부터 국수주의적 극우단체라는 비난을 받아 대한청년단으로 통합되었다.

    조선민족청년단의 이러한 이념은 이후 1공화국 이승만 정부가 내세운

    일민주의(一民主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고,

    1950년에는 주중국대사, 같은 해에 내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51년 12월 이승만의 지시로 이기붕 등과 자유당을 창당했으며,

    1952년에는 원외 자유당 부당수로 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으며,

    1953년이승만의 족청계 숙청으로 자유당에서 제명당했다.

    1956년에는 무소속으로 다시 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고,

    1960년 자유연맹을 바탕으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1963년에는 ‘국민의 당’ 결성에 참여하여 최고 의원이 되었고,

    1967년 1월에는 윤보선·유진오·백낙준과 함께 4자회담을 성사시켜

    통합야당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72년 5월 11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회고록인 『방랑의 정열』, 논설집 『민족과 청년』·『우등불』 등이 있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일화 및 어록

    조국!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말이고, 또 생각 없이 불리며 일컬어지는 단어다.

    그러나 조국이라는 이 두 글자처럼 온 인류,

    각 민족에게 제각기 강력한 작용과 위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다시없으리라 본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믿는 것이 옳은 내 견해이고, 내 체험의 소산인 것이다.

    이범석 장군의 회고록 『우등불』 중에서

    자료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210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1900년 10월 20일 출생

    1972년 5월 11일 서거

    1972년 5월 17일 국민장

     
     
     
     

    나라와 겨레의 바치신 한평생

    역사의 수레를 앞장서 끌어가신 한평생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이 의기와 정열로 불태우신 한평생

    마음속 얼룩진 한 점 티끌이 없이 해와 달과 더불어 찬란하신 혁명의 한평생

    강물에 달빛이 드리우듯 온 겨레 가슴에 빛나는 정신을 깊이 남기신

    철기 이범석 장군님 여기 부인 김마리아 여사와 함께 고이 잠드시다.

    송지영 글

     
     
     
     

    약력

     

    1915년 경기고교 재학 중 中國(중국)에 망명

    1919년 中國 雲南(중국 운남) 육군강무학교 졸업

    1919년 滿洲(만주)에서 독립군 양성

    1933년 中國 東北(중국 동북) 항일군 黑龍江省(흑룡강성) 작전과장 등으로 항일전 지휘,

                 독립투사 김마리아와 결혼

    1933년 중국 육군 第三路軍(제3로군)

    1940년 참의, 同(동) 第三集團軍(제3집단군) 군단참모장

    1941년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美軍(미군)과 협동으로 대일전 참전

    1946년 朝鮮民族靑年團(조선민족청년단) 창설

    1961년 단장,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 주중대사, 참의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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