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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남윤씨(海南尹氏) - 대전 효월드 뿌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6. 26. 04:05

     

    三開獄門 積善之家(삼개옥문 적선지가)

     

    해남윤씨 입향조(入鄕祖) 윤효정은 기근으로 세금을 내지 못한 농민들이

    감옥에 갇히는 안타까운 사정을 보고 감옥문을 세 번이나 열어 구휼하는 적선을 했다.

    이에 당시 임금 중종은 윤효정에게 ‘삼개옥문 적선지가(三開獄門 積善之家)’라는 어지를 내렸다.

     
     
     
     

    해남윤씨(海南尹氏) 유래

     

    해남윤씨 시조 윤존부(尹存富)는 고려 문종(11대, 1046~1083년) 때 인물이며,

    중시조 8세 윤광전(光琠)은 고려 충숙왕(27대, 1332-1339년) 때 사온직장영동정(司醒直長令同正) 봉직 후

    가솔을 데리고 전남 강진(탐진) 덕정동을 세거지로, 후손이 번연하여

    8파(長派, 竹寺洞派, 支石派, 富春派, 項村派, 龍山派, 漁樵隱派, 忠南派)를 이루었다.
    해남윤씨가 됨은 조선 중종(11대, 1506~1544년) 때 해남의 어초은 윤효정(孝貞)이

    심한 기근으로 세금을 내지 못한 농민들을 감옥에 가두는 안타까움을 보고

    옥문을 세 번이나 열어 구휼함이 칭송되어 중종이 "삼개옥문 적선지가라 하며,

    그 자손들에게 잡역을 면제하게 하라"고 전지(傳旨)하였다.

    장자 귤정 윤구(衢) 중종 8년(1513) 과시(科試)에 관(貫)을 해남으로 하였고,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학문과 문장 지절이 높아 호남 삼걸로 명성을 얻었다.

    정묘왜변 · 임진왜란 ·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 선조들은 가솔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나라를

    수호하는데 큰 공적을 세워, 특별히 7분의 선조가 강진 화암사(花巖祠)에 모셔져 있다.

    중요한 사료(史料)는 도선산(都先山) 한천동 영모당, 덕정동 추원당,

    고려 공민왕 3년(1354) 노비허여문기, 임오보 목판본, 가전고화첩,

    조선 효종(17대, 1658)이 윤선도에 내린 해남 녹우당과 금쇄동이 국가사적지,

    완도 보길도 윤선도 원림이 국가 명승지 등이 있고,

    공재 윤두서 자화상은 국보(제240호)로 세계 유일하다.

    '고산윤선도유물 전시관, 국립중앙박물관, 규장각' 등에 유물 · 고서 등 1만 5천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산 윤선도(善道)는 모든 학문을 탐구한 대선비이며 국문학의 대가로

    오우가, 어부사시사는 널리 애송하고 있다.
    공재 윤두서(斗緖)는 회화의 거목이며 3대가 선미 화가이다.

    죽록 윤효관(孝寬)은 순조 때에 영월부사로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善政碑)가 있다.

    바오로 윤지충은 천주교 최초 순교자로 성인(聖人)이며, 방산 윤정기(廷琦)는 다산학의 계승자이다.
    윤관(錧) 대법원장(12대), 윤일영(一泳) 중앙선거관리위원장(7대, 대법관) 등 공직 · 국회의원 ·

    학자 ·법조인 · 언론인 · 기업인 등이 각계에서 국가 발전에 헌신하고 있다.

    해남윤씨는 학문과 예술, 충효사상을 계승하며 명문가로 이어갈 것이다.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 47 (안영동) 중구 효문화마을관리원 뿌리공원 內

     

     
     
     

    해남윤씨 상징 조형물


    작품명 : 번영의 횃불
    작가 : 한국환경조각연구소 신동수, 이동범, 남형돈

     

    조형탑 상단은 타오르는 횃불을 받들고 있는 모습은 해남윤씨의 기상과 희망을 보여주었으며,

    섬세한 조각으로 ‘붓’을 표현함으로써 ‘붓’은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을 배출하였다는

    상징적으로 나타내어진 것이며, 중앙의 팔각 조각은 문중의 8파를 의미하는 동시에 보석의 형상으로

    해남윤씨는 보석과 같은 국가 유산과 유물을 만들어 낸 문인과 예술가들을 수없이 배출함으로써,

    명문가로서의 자긍심을 보여주고자 조형미 있게 조각하였다.

     
     
     
     

    공재 윤두서 자화상(국보)

    시대 : 조선 숙종 350년 전

    소재지 : 전남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

    소장지 : 고산윤선도유적지기념관

    소유자 : 종손 윤형식

     
     
     
     

    오우가(五友歌) -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月) 떠오르니 그것이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맊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좋다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소리 맑다하나 그칠 때가 많은지라

    좋고도 그칠 때가 없기는 물 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찌하여 프르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지고 추우면 잎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하여 눈과 서리를 모르느냐

    땅속 깊이 뿌리가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러고 사철을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비추니

    밤중에 밝은 빛이 너만 한 것 또 있겠는가

    보고도 말이 없으니 내 벗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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