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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적, 명동 주교좌 대성당(明洞 主敎座 大聖堂)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2. 7. 21. 04:05

    명동 주교좌성당(明洞 主敎座 聖堂)

     

    한국 최초의 본당이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인 명동성당의 건립공사는

    1887년에 시작하여 1892년 5월 8일에 정초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당시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건축공사에 참여했거나 헌금한 조선인 신자 1,000여 명과

    조선에서 사목한 선교자 명단도 성당의 머릿돌과 함께 묻었다.

    1898년 5월 29일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하여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부지 14,421㎡에 지어진 명동성당은 연건평이 1,498㎡에 달하며,

    길이 69m, 너비 28m, 높이 23m이다. 종탑의 높이는 46.7m이다.

    고의선(高宜善, E.J.G Coste, 1842~1896) 신부가 설계한 이 건물은 한국의 가톨릭 성당

    건축사뿐만 아니라 19세기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고딕식 건축물이다.

    언덕 위에 위치한 성당 건물은 건립 당시에는 서울 사대문 안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었다.

    100여 년에 걸쳐 박해(迫害)로 점철(點綴)되었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명동성당과 함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이후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인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 되었다.

    처음 명칭은 종현성당이었으나, 해방 이후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

    1977년 11월 22일에는 대한민국의 국가지정문화재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

     
     
     
     

    79위 복자화(79位 福者畵)

     
     
     
     

    유리화(스테인드 글라스)

     

    대성당 내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성서 내용과 로사리오의 현의를 담아,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그림으로 교리를 교육하는 데에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의 유리화는 1982년 故 이남규 화백에 의해 복원된 것으로,

    원래는 프랑스 베네딕도회 수사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세대(聖洗臺)

     
     
     
     

    명례방 집회화(明禮坊 集會畵) - 김태 作

     
     
     
     

    성 베네딕도(분도) 상

     
     
     
     

    ♱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요한 바오로 Ⅱ세 교황(loannes Paulus PP. Ⅱ)

    조각 임송자(리따) 作 - 청동 부조상

     
     
     
     

    프란치스코 교황(Franciscus PP.)

    조각 이용덕(루가) 作 - 청동 부조상

     
     
     
     

    이재명 의사 의거터(李在明 義士 義擧址)

     

    이재명(1890~1910)은 친일 매국노인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을 척살하려 한 독립운동가이다.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순국하였다.

     

     
     
     

    서소문 순례길(西小門 巡禮路)

     

    천주교 역사의 시작과 근대건축물을 둘러보는 길

     

    (코스안내)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서울시립미술관 –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 중림동 약현성당

     
     
     
     

    명동대성당 내부 안내도

     

    대성전 건물 외관이 장식적 요소가 배제된 순수 고딕 양식인 반면,

    성당 내부에는 이치형 복도, 스테인드 글라스 등으로 공간의 미를 살렸다.

    또한 곳곳의 제대(祭臺), 성화(聖畫), 성상(聖像) 등 종교 예술품은

    명동성당의 종교적, 미술적 가치를 더한다.

     
     
     
     

    명동 대성당(明洞 大聖堂)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며,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다.

    이곳에 처음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784년 명례방 종교집회였다.

    이후 1892년 코스트 신부가 성당 설계에 착수하였으며, 1898년 5월 29일,

    한국 교회의 주보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하여 대성당을 축성 봉헌하였다.

    1900년대부터는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 순교한 분들의 일부 유해를 모시게 되었고,

    현재까지 지하 성당에 모셔져 있다.

    1942년에는 최초의 한국인 주임신부가 부임하였으며,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주교의 서품식도 거행되었다.

    1945년에는 광복을 맞아 성당의 이름을 '종현 대성당'에서 '명동대성당'으로 바꾸었다.

    명동대성당은 1970년대~1980년대 근현대사의 격동기에

    한국사회의 인권신장 및 민주화의 성지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기도하고 선교하는 공동체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 최초의 벽돌조 성당, 순수한 고딕 양식 구조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성전이기에

    그 건물 양식으로도 하나의 교회사적,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대성당의 평면은 라틴십자가형 삼랑식이고, 성당의 높이는 23m, 종탑의 높이는 46.7m이며,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사적, 명동대성당(명동주교좌 성지성당)

     

    명동대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다.

    이 자리는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가 있던 명례방 근처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에 귀국해 활동하던

    돌우물골(현 중구 소공동) 인근이기도 하다.

    1898년에 지어진 이 아름다운 성당은 본당 설립 이후 줄곧 한국 천주교회 신앙의 중심이 되어왔다.

    고딕 구조에 가까운 본격적인 서양식 성당으로 프랑스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였다.

    토지 매입은 1883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풍수지리설에 따른 정부와의 갈등,

    청일전쟁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15년 만에 완공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 지원으로 1892년 착공했는데,

    신자들이 무보수로 팔을 걷어붙이고 공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오랜 박해에서 획득한 신앙의 자유, 소외되고 가난한 민중의 안식처, 민주화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당 한편에 자리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은 성당보다 앞서 1890년 ‘주교관’으로 신축된 건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벽돌 건축물 중 하나이다.

    주교관 및 경리부 건물로 사용되다가 2018년 6월 2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으로 

    새로이 문을 열고 한국 천주교회의 태동부터 오늘의 서울대교구가 있기까지의

    변천사를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74 (명동) 명동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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