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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農村振興廳) ...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수원사랑/볼거리 2007. 11. 14. 20:01
농촌진흥청(農村振興廳)
농촌진흥을 위한 시험·연구 및 농민의 지도와 농촌지도자의 수련에 관한 사무를 관장할 목적으로 설치된 농림부 직속기관.
농촌진흥청의 모태가 된 기구는 1949년 1월에 신설된 농업기술원(農業技術院)이며,
1957년 2월 농사교도법(農事敎導法)이 제정되고 농업기술원이 농사원(農事院)으로 그 명칭이 바뀌면서
그 동안 독립적으로 실시해 온 시험장·연구소의 기능을 통합·조정할 중앙기구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1962년 4월 농사원·농림부지역사회국·농림부훈련원을 통폐합하여 농촌진흥청 직제를 제정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1996년 한국농업전문학교를 신설했고, 2002년 농업과학기술원의 생물자원부를 폐지하고
농업생명공학연구원을 발족시켰으며, 연구관리국에 생명공학기획조정과를 신설했다.
소재지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이다.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농촌진흥청(農村振興廳)의 전신인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은
일제 통감부가 1906년 우리 나라에서의 농업기술의 시험·조사 및 지도를 위해 설치한 기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한 뒤, 일제는 우리 나라의 농업을 일본자본주의
체제로 확고하게 편입시키기 위해 우리 나라 농업구조의 개편을 서둘렀다.
우리 나라의 농민들에게 ‘농사개량’이라 선전하면서 농업기술의 변경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개량’이란 일본의 농법을 우리 나라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농사개량을 위해 통감부는 1906년 4월에 〈통감부권업모범장관제〉를 발표하였고,
6월 15일에는 경기도 수원에 권업모범장이 창설되었다.
관원으로는 장장(場長) 1명, 기사(技師) 6명, 기수(技手) 8명, 서기 4명을 두었다.
권업모범장은 우리 나라 농업의 발달·개량을 위한 모범 및 시험, 물산(物産)의 조사와 농업상에 필요한 물료(物料)의
분석과 감정, 종묘·잠종·종금(種禽)·종돈(種豚) 등의 배부, 농업상의 지도·통신 및 강화(講話) 등을 관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권업모범장의 사업은 일본 농법을 우리 나라에 이식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시험·조사보다는 모범, 즉 지도·권장에 중점이 두어졌다.
1907년 4월 한국정부에 그 관리가 이관되었던 것은 권업모범장이 통감부 하에 있어
지도·권장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08년 이후 전국 각지에 시험지·출장소 등이 설치되어, 특히 남부지방에서 육지면재배 강요 사업의 첨병 구실을 하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점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1917년 전국 13개 도에 13개 소의 종묘장이 설치되었다.
그 밖에 원예지장(園藝支場)·면작지장(棉作支場)·목양지장(牧羊支場)·잠업시험소 등을 각지에 설치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는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종자개량 등을 통해 증산에 기여하기도 했다.
1929년에는 농업시험기관으로서의 임무 수행을 위해 ‘농사시험장’이라 개칭하게 되었다.
권업모범장은 우리 나라 농업발전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 수행에 있어서 첨병 구실을 한 기관이라 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 청사 전경
4-H 운동 50주년 기념상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표석
잠업시험소, 여자잠업강습소
권업모범장
권업모범장과 잠업강습소를 표기한 옛날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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