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최대의 행궁 "화성행궁(華城行宮)"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정조가 현륭원에 전배(展拜)하기 위하여 행행(幸行) 때에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상시에는 부사(뒤에는 留守)가 집무하는 부아(府衙)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왕 13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부터 정조 24년 1월까지 ..
화성행궁 노래당(華城行宮 老來堂)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의 화성행궁은 정조가 아버지의 제례를 지내러 왔을 때 묵었던 궁궐이다. 그러나 화성행궁은 단순한 행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정조는 1804년 상왕으로 물러난 뒤 여기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화성에서 아버지의 한을 풀고,..
설경의 화성행궁(華城行宮)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정조가 현륭원에 전배(展拜)하기 위하여 행행(幸行) 때에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상시에는 부사(뒤에는 留守)가 집무하는 부아(府衙)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왕 13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부터 정조 24년 1월까지 12년간 13차례에 ..
아름다운 화성행궁(華城行宮) 설경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정조가 현륭원에 전배(展拜)하기 위하여 행행(幸行) 때에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상시에는 부사(뒤에는 留守)가 집무하는 부아(府衙)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왕 13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부터 정조 24년 1월까지 12년간 13차례에 걸친 ..
화성행궁 유여택(華城行宮 維與宅) 유여택이라는 이름은 시경(중국의 고전)의 내용 중 "상제께서 모두 물리치시고 나라의 규모를 크게 하리라. 이내 서녘을 돌아보시고 이집을 지었다(유여택)"라는 내용이다. 정조의 입장에서 화성유수룰 임명하여 내려보내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화성행궁의 유여..
화성행궁의 편액(華城行宮의 扁額) 화성행궁(華城行宮) 봉수당(奉壽堂) 비장청(裨將廳) 장락당(長樂堂) 복내당(福內堂) 서리청(書吏廳) 유여택(維與宅) 공신루(拱宸樓) 좌익문(左翊門) 경선문(慶善門) 다복문(多福門) 득한문(得閒門) 빈희문(賓曦門) 삼수문(彡壽門) 유복문(維福門) 장복..
화성행궁의 정문 "신풍루(華城行宮 新豊樓)" 수원화성의 신풍루는 정조13년(1789)에 화성행궁의 정문(正門)으로 누문(樓門)을 세우고, 처음에는 조심태가 편액(扁額)을 써서 진남루(鎭南樓)라 하였다. 6칸 규모에 2층 구조로, 위층은 누마루를 만들고 아래는 3개의 널문을 설치하였는데, 누마..
화성행궁 낙남헌(華城行宮 洛南軒) 조선 정조18년(1794년)∼20년(1796년) 사이에 수원화성 성곽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편에 화성행궁을 건립하고, 정조는 효성이 지극하여 선왕의 원침에 자주 전배하고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낙남헌은 정당은 7량 14.5칸의 규모로, 기단은 벽돌을 돌을 섞어 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