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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집사청(華城行宮 執事廳) 집사(執事)란 주인을 모시고 그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의 집사청(執事廳)은 궁궐의 액정서(掖庭署:국왕이 쓰는 붓과 먹, 벼루 등을 보관하며 대궐안의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가지 설비, 비품 등을 관리하는 관청)와 같이 ..
화성행궁(華城行宮)의 정문으로 세운 '신풍루(新豊樓)' 화성행궁(華城行宮)의 정문으로 세운 신풍루(新豊樓)는 정조13년(1789)에 지은 누문(樓門)으로, 처음에는 조심태가 편액(扁額)을 써서 진남루(鎭南樓)라 하였다. 6칸 규모에 2층 구조로, 위층은 누마루를 만들고 아래는 3개의 널문을 설..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비(碑) 즉, 관직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모두 말(馬)에서 내려라는 뜻이다. (수원 화령전 입구에서~)
화성행궁 낙남헌(華城行宮 洛南軒) 조선 정조18년(1794년)∼20년(1796년) 사이에 수원화성 성곽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편에 화성행궁을 건립하고, 정조는 효성이 지극하여 선왕의 원침에 자주 전배하고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낙남헌은 정당은 7량 14.5칸의 규모로, 기단은 벽돌을 돌을 섞어 쌓..
화성행궁 득중정(華城行宮 得中亭) 1789년(정조 13년)에 처음 짓고, 이듬해 정조가 이곳에서 활을 쏘아 4발 모두를 적중시켜 ‘득중정(得中亭)’이란 편액(扁額)을 내렸다. 그러나 득중정은 1794년(정조 18년) 가을에 노래당(老來堂) 뒤쪽으로 옮겨짓고 어서(御書)의 편액을 걸었다. 5량 13컨의 ..
임금님이 쉬어가던 처소 "화성행궁(華城行宮)"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에 위치한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이 정조 20년(1796)에 수원화성(水原華城)을 쌓은 뒤 팔달산(八達山) 동쪽기슭에 세운 행궁(行宮: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으로 정조대왕은 효성이 ..
화성행궁(華城行宮)의 '신풍루(新豊樓)' 화성행궁(華城行宮)의 정문으로 세운 신풍루(新豊樓)는 정조13년(1789)에 지은 누문(樓門)으로, 처음에는 조심태가 편액(扁額)을 써서 진남루(鎭南樓)라 하였다. 6칸 규모에 2층 구조로, 위층은 누마루를 만들고 아래는 3개의 널문을 설치하였는데, 누..
야한 밤에 "화성행궁 봉수당(華城行宮 奉壽堂)"에서 봉수당(奉壽堂)은 화성행궁(華城行宮)의 정전(正殿) 건물이자 화성유수(華城留守)의 동헌(東軒)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한다. 1789년(정조 13년) 가을에 신읍치의 부아(副衙)로 건립되어, 정조 18~20년에 북각도(北閣道) 외 48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