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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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 - 보물 제162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9. 19:48
늙은 소 힘쓴 지 이미 여러해(老牛用力 已多年, 노우용력 이다년) 목 부러지고 가죽 헤어져 잠자기만 좋아하네(領破皮穿 只愛眠, 영파피천 지애면) 쟁기질, 써레질 이미 끝나고 봄비도 충분한데(犁耙已休 春雨足, 이파이휴 춘우족) 주인은 어찌하여 괴롭게도 또 채찍을 가하네(主人何苦 又加鞭, 주인하고 우가편)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 - 보물 제1627호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는 선조(宣祖)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가 큰 글자로 쓴 칠언절구의 시이다. 종이바탕에 4행으로(각행 7자) 썼으며 근대에 족자로 장황되었다. 어필 아래에는 서예가 배길기(裵吉基)의 1966년 발문이 있다. 바탕은 보존이 양호한 편이며 다만 줄[行] 사이가 좀 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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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옹주 태실비(貞淑翁主 胎室碑) - 화성시 향토문화재(유형) 제1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8. 29. 04:27
정숙옹주 태실비(貞淑翁主 胎室碑) 정숙옹주(貞淑翁主,1587~1627)는 선조(宣祖, 1552~1608)와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서3녀로 영의정을 지낸 신흠의 아들 평산인(平山人) 동양위 신익성(東陽尉 申翊聖, 1588~1644)과 혼인하여 5남 4녀를 낳았다. 태실은 조선시대 왕실의 자손이 태어나면 태(胎)를 묻고 복을 기원했던 시설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정숙옹주 태실비는 동탄호수공원 제방 북쪽 태봉산(49m) 정상부 남향을 하고 있으며, 태실은 보이지 않고 태실비만 남아 있다. 비는 영봉형 비두에 비좌를 갖추었고, 비두와 비신은 일체형으로 비좌에는 복련과 안상을 새겼다. 태실비의 크기는 비신과 비두를 합한 높이가 183cm, 비신 폭 47cm, 두께 15cm, 비좌 너비 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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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릉(穆陵) - 선조(宣祖) · 의인왕후(懿仁王后) · 인목왕후(仁穆王后)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9. 11. 6. 04:30
목릉(穆陵) - 선조(宣祖)·의인왕후(懿仁王后)·인목왕후(仁穆王后)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1522~1608, 재위1567~1608)는 중종(中宗)의 손자로 제13대 명종(明宗)이 대를 이을 자식이 없이 돌아가시자 선조가 왕위에 올랐다. 선조가 임금의 자리에 있을 때 비록 임진왜란(壬辰倭亂)과 같은 위기가 있었지만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유학을 증진하였기 때문에 훗날 선조의 시대를 지칭할 때 그 능의 이름을 따서 '목릉성세(穆陵盛世)'라고 부르기도 한다. 선조의 첫 번째 비는 의인왕후(1555~1600)이다. 두번째 비는 인목왕후(1584~1632)인데, 의인왕후가 돌아가신 후 1602년(선조 35)에 왕비가 되었으며,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하지만 광해군(光海君)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