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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德壽宮) 석어당(昔御堂)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4. 1. 13. 04:46
덕수궁(德壽宮) 석어당(昔御堂)
덕수궁(德壽宮) 석어당(昔御堂)
경운궁(慶運宮) 석어당(昔御堂)은 덕수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층건물로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 같은 2층 목조 건물이다.
1904년 경운궁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05년에 복원되었다.
‘석어(昔御)’는 ‘옛날에 임어(臨御)하였다’, 즉 옛날 선조(宣祖)가 머물렀다는 의미다.
임진왜란으로 피난 갔던 선조가 환도해 1593년부터 시어소(時御所)로 사용한 건물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경복궁, 창덕궁 등을 중건하지 못한 채
이 곳에서 16년을 지내다1608(선조 41)년 승하했다.
1618(광해군 10)년에 광해군(光海君)이 인목대비를 이 곳에 유폐했으며,
인조 반정 이후에는 광해군이 이 곳 앞마당에서
인목대비(영창대군의 생모)에게 죄를 고하고 인조에게 옥새(玉璽)를 건넸다.
경운궁에 있는 유일한 2층 목조 건물로 1층에는 방과 대청이 있고,
2층은 칸막이 없이 마루를 깔았으며 궁궐 안 건물임에도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이다.
석어당에는 2개의 편액이 걸려 있고 위층 처마 밑에 있는 글씨는
1904년 중건 당시 김성근(金聲根)이 쓴 것이다.
아래층에 있는 글씨는 고조 광무제의 어필(御筆)이다.
오른쪽 상단에 전서로 '어필(御筆)',
왼쪽에 '광무 9년 을사 7월 일(光武九年乙巳七月 日)'이라고 적혀 있으며
1905년 고조 광무제가 쓴 것이다.
덕수궁(德壽宮)은 고종황제 퇴위후 황제위에게 밀려난 고종황제에게
부인 궁호일 뿐이며, 원 명칭은 경운궁(慶運宮)이다.
덕수(德壽)란 조선시대초 정종에게 양위하고 물러났던 태조에게 붙였던 명칭으로
물러난 왕에게 덕을 누리며 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올리는 일종의 보통명사이다.
덕수궁은 고종황제께서 아관파천(俄館播遷, 1987년)후 환궁하시면서 정식 궁궐이 되었는데
이유는 이미 1880년대에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등 서양 여러나라와 수교하면서
공사관 부지로 떼어준 관계로 각국 공사관옆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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