華城城役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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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루(西鋪樓) -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9. 14. 19:51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동북포루 내도(東北鋪樓 內圖)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동북포루 외도(東北鋪樓 外圖) 서포루(西鋪樓) - 화성 서포루는 서암문과 서3치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서포루는 서장대 쪽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는 동북포루와 형태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포루 누각은 복원했으나 치성은 원형이 잘 남아있다. * 1796년(정조 20) 창건, 1975년 누각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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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문(西暗門) - 사적 제3호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9. 13. 19:28
정리의궤 서암문 내도(整理儀軌 西暗門 內圖) 화성성역의궤 서암문 외도(華城城役儀軌 西暗門 外圖) 서암문(西暗門) - 사적 제3호 화성 서암문은 화성 서쪽 팔달산 꼭대기 성벽에 설치한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서암문은 성벽을 안쪽으로 90도 꺾어 들어가도록 쌓고, 그 사이에 문을 내 바깥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화공(火攻)에 대비하기 위한 오성지(五星池)나 적을 감시하기 위한 비예(睥睨) 같은 별도의 방어 시설을 두지 않고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살렸다. 1796년(정조 20) 창건, 1975년 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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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화성장대(서장대) 현판 교체 및 어제화성장대시문 게시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4. 13. 04:30
수원화성 화성장대(서장대) 현판 교체 및 어제화성장대시문 게시 경기도 수원시는 정조가 수원화성과 장용영 군사의 모습을 보고 지은 시(詩)를 새긴 ‘어제화성장대시문’ 현판을 새롭게 복원해 수원화성 화성장대(서장대)에 게시했다. 새로 복원한 ‘어제화성장대시문’(御製華城將臺詩文) 현판은 정조대왕이 1795년 서장대에서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수원화성과 장용영 군사들의 위용에 만족감을 표현한 시를 새긴 것이다. 서장대는 수원화성에서 유일하게 어제(御製, 왕이 지은 글), 어필(御筆, 왕이 쓴 글씨) 현판이 함께 게시된 건축물로 수원화성에서 가장 격이 높다. 화성장대 현판 글씨는 정조가 썼다. 수원시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판 원본을 복제해 '화성성역의궤' 기록에 따라 잣나무를 사용했고, 고증 결과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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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건축보고서의 진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9. 9. 2. 19:30
조선시대 건축보고서의 진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프랑스 소재 한글본 ‘뎡니의궤(整理儀軌)’ 중 채색 화성전도 조선시대 건축보고서의 진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수원화성 축성은 큰 토목건축 공사로서 많은 경비와 기술이 필요하였으므로, 그 공사 내용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겨야 하겠다는 뜻에서 정조가 봉조하(奉朝賀) 김종수(金鍾秀)에게 편찬을 명령, 1796년 9월에 시작하여 그 해 11월 원고가 완성되었고, 이어 1801년(순조 1) 9월에 인쇄 발간되었다. 책의 체제는 권수(卷首) 1권, 본편(本編)은 제1권에서 제6권까지로 축성공사와 관련된 내용이며, 부편(附編) 3권은 행궁의 증축공사에 대한 내용으로 총 10권 9책이다. 책의 구성은 책머리에는 이 책의 편찬방법, 경위, 구성방침을 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