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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팔달산 채석장(水原華城 八達山 採石場)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19. 5. 4. 04:30
수원화성 팔달산 채석장(水原華城 八達山 採石場)
정조시대 화성 축성공사 당시 석재는 성곽에서 3~7리 떨어진
팔달산, 숙지산, 여기산에서 떠온 돌을 다듬어서 사용하였다.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관청에서는 미리 정해 놓은 석재 규격에 따라 값을 매겨놓고
일꾼들이 돌을 떠오면 그만큼 값을 쳐주었는데 그 덕분에 석재를 일정한 규격으로 통일할 수 있었다.
이곳은 팔달산에서 돌을 뜬 흔적이 남은 유적으로 바위 군데군데에 쐐기를 박았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정(釘)을 사용해서 돌에 구멍을 뚫은 다음 그 속에 물푸레나무나 밤나무를 박고 물을 부어두면
나무가 팽창하는 힘에 의하여 무거운 돌이 갈라지며 떠오른다.
‘돌을 뜬다(浮石, 부석)’라는 표현에는 이와 같은 공정이 담겨 있다.
채석장에서 크기별로 다듬은 석재를 거중기(擧重機)로 들어 올려 수레에 싣고 축성 현장까지 운반한다.
화성축성 당시 네 개의 바퀴가 달린 동차(童車),
비탈진 곳에서도 평행을 유지하는 유형거(游衡車)라는 수레가 주로 사용되었다.
수원화성 축성시 석재(돌)은 숙지산과 여기산에 각각 2곳, 권동에 1곳 등 모두 5군데에서 채취하였다.
그러나 공사 중 팔달산에서도 석맥을 발견하여 서성(西城)은 제자리에서 캔돌을 사용하였다.
그중에서 숙지산 돌은 81,100덩어리, 여기산 돌은 62,400덩어리, 권동 돌은 30,200덩어리,
팔달산 돌은 13,900덩어리 등 모두 187,600여 덩어리가 수원화성 축성에 소요되었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의하면 숙지산 돌은 강하면서 결이 가늘고,
여기산 돌은 부드러우면서 결은 거칠고, 권동의 돌은 부드러우면서 결이 좀 가늘었다.
팔달산 돌은 숙지산 돌보다 더 강하고 여기산 돌보다 더 거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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