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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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보금자리, 서호(축만제) 인공섬수원사랑/축만제(祝萬堤) 2022. 6. 18. 19:06
새들의 보금자리, 서호(축만제) 인공섬 西湖(祝萬堤)는 조선 정조 23년(1799년) 화성 서쪽에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로 다양한 새와 생물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자연이 공존하는 도심 속 생물서식지로 2016년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수원 서호공원의 축만제 인공섬은 1996년 서호공원을 조성할 때 나온 준설토(浚渫土)를 활용하여 축만제 한가운데에 조성한 12,000㎡ 면적의 인공섬이다. 이곳 인공섬에는 아까시나무를 중심으로 팽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버즘나무 등 나무 15종과 미국자리공, 명아주, 애기똥풀 등 지피류 32종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민물가마우지 배설물이 덮인 나무와 말라죽은 나무들도 다수 있고, 유해식물 외래종인 환삼덩굴과 가시박이 우세종으로 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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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만제의 겨울철새, 큰기러기수원사랑/축만제(祝萬堤) 2021. 12. 3. 21:16
축만제의 겨울철새, 큰 기러기 조선시대 정조는 "농가의 이로움은 수리(水利)만 한 것이 없다."라고 토로하며 1799년(정조 23) 화성부(華城府) 서쪽 5리에 있는 여기산 아래에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인 길이 1,246척(377.5m), 너비 720척의 축만제(祝萬堤)와 축만제둔(祝萬堤屯)을 건설하였다. 수원 화성의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西湖)라고도 불렸으나 2020년 3월 18일,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제2020-1130호)에 따라 서호의 명칭을 원래 이름인 ‘축만제’로 공식 변경됐다. 이곳에는 수원시가 1996년 공원을 조성할 때 나온 준설토를 활용해 축만제 한가운데에 인공섬을 만들었다. 마땅히 처리할 데가 없던 준설토를 쌓았더니 면적이 1만 2천㎡나 되는 인공섬이 됐다. 인공섬은 제방으로부터 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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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치있는 축만제의 노송(老松)수원사랑/축만제(祝萬堤) 2021. 8. 20. 19:20
운치있는 축만제의 노송(老松) 수원 축만제(水原 祝萬堤) - 경기도 기념물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2005.10.17. 축만제는 1799년(정조 23년)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길이 1.246척, 너비 720척이라는 당시로는 최대크기로 조성된 저수지이다. 이에 앞서 정조는 1795년 장안문 북쪽에 만석거(萬石渠)를,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만년제(萬年堤)를 축조했었다. 대규모 수리시설과 둔전 개간이 크게 성공하자 정조는 만석거와 만년제의 3배 규모에 달하는 축만제를 조성하였고, 개간된 둔전에서 얻은 수익은 화성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사용하였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으로써 화성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西湖)로 불린다. 정조시대의 농업기반시설은 일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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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정 현판(杭眉亭 懸板)수원사랑/축만제(祝萬堤) 2021. 7. 11. 20:14
2019년 12월에 새롭게 제작 설치한 항미정 현판 근당 양택동(槿堂 梁澤東) 선생의 글씨 항미정(杭眉亭) -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 항미정은 축만제(서호)에 있는 정자로 순조 31년(1831) 당시 화성유수였던 박기수(朴綺壽, 1774~1845)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다. 박기수는 1831년 2월 21일 화성유수에 임명되어 이듬해 1832년 윤 9월 4일 대사헌으로 이임하기까지 11개월간 재임하면서 항미정을 창건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성지(華城誌)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항미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구(詩句)에 "서호(西湖)는 항주(杭州)의 미목(眉木)과 같다"라고 읊은 데서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항미정의 구조는 남북으로 ㅡ자형 4칸과 전퇴(前退)가 있는 건물을 기본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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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축만제(水原 祝萬堤) - 경기도기념물 제200호수원사랑/축만제(祝萬堤) 2020. 4. 6. 19:30
수원 축만제(水原 祝萬堤) - 경기도기념물 제200호 수원 축만제(水原 祝萬堤) - 경기도기념물 제200호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八達區) 화서동(華西洞)에 있는 저수지로 면적 0.19㎢, 둘레 1,900m이다. 1799년(정조 23) 수원 화성을 쌓을 때 내탕금(內帑金) 3만냥을 들여 함께 축조한 관개저수지이다. 당시의 수면 면적은 0.4㎢, 저수량은 14만 8,000t에 이르렀다. 수원 화성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호(西湖)라고도 불린다. 축만제의 남쪽 끝에 호수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항미정(杭眉亭)이 있는데, 이곳의 낙조는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해 수원팔경 중 한 곳으로 꼽혔다. 예로부터 부근 농경지의 관개용수로 이용되었으며, 농촌진흥청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실습답(實習畓)이 설치되고, 수원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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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정(杭眉亭) - 수원 축만제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19. 10. 24. 19:30
항미정(杭眉亭) -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 항미정은 축만제(서호)에 있는 정자로 순조 31년(1831) 당시 화성유수였던 박기수(朴綺壽, 1774~1845)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다. 박기수는 1831년 2월 21일 화성유수에 임명되어 이듬해 1832년 윤9월 4일 대사헌으로 이임하기까지 11개월간 재임하면서 항미정을 창건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성지(華城誌)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항미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구(詩句)에 "서호(西湖)는 항주(杭州)의 미목(眉木)과 같다"고 읊은데서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항미정의 구조는 남북으로 ㅡ자형 4칸과 전퇴(前退)가 있는 건물을 기본구조로 하고, 북쪽 끝에서 서쪽으로 2칸의 공랑(公廊)을 붙였고, 남쪽 끝에서 동쪽으로 1칸의 마루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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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사 박문회 송덕비(前 主事 朴文會 頌德碑)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9. 4. 25. 22:30
전 주사 박문회 송덕비(前 主事 朴文會 頌德碑)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 위치한 서호(西湖)는 지금은 서호공원이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 농업의 산실인 농촌진흥청 농사시험 연구에 사용하는 물을 대는 저수지였다. 서호제방의 동쪽 끝에는 조경용 철망으로 둘러 싸인 "서호지(西湖池)"라고 쓴 작은 건물(옛 수문)이 있고, 그 앞에 비석 하나가 있다. 비문은 아래와 같다. 파경개축공세적○(破坰改築公稅適○) 전 주사 박문회 송덕비(前 主事 朴文會 頌德碑) 폐압복완구민완제(廢壓復完救民安諸) 이 비문은 전 주사(前 主事)인 박문회(朴文會)를 칭송하는 송덕비(頌德碑)다. 제방이 파괴되자 새로 쌓았다는 '破坰改築(파경개축)'과 수압이 있어 제방이 무너지는 위기가 있었으나 복원했다는 '廢壓復完(폐압복원)'이라는 비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