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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사 박문회 송덕비(前 主事 朴文會 頌德碑)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9. 4. 25. 22:30
전 주사 박문회 송덕비(前 主事 朴文會 頌德碑)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 위치한 서호(西湖)는 지금은 서호공원이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 농업의 산실인 농촌진흥청 농사시험 연구에 사용하는 물을 대는 저수지였다.
서호제방의 동쪽 끝에는 조경용 철망으로 둘러 싸인 "서호지(西湖池)"라고 쓴
작은 건물(옛 수문)이 있고, 그 앞에 비석 하나가 있다.
비문은 아래와 같다.
파경개축공세적○(破坰改築公稅適○)
전 주사 박문회 송덕비(前 主事 朴文會 頌德碑)
폐압복완구민완제(廢壓復完救民安諸)
이 비문은 전 주사(前 主事)인 박문회(朴文會)를 칭송하는 송덕비(頌德碑)다.
제방이 파괴되자 새로 쌓았다는 '破坰改築(파경개축)'과
수압이 있어 제방이 무너지는 위기가 있었으나 복원했다는
'廢壓復完(폐압복원)'이라는 비문으로 보아
큰 장마로 제방(堤防)이 무너지는 위기가 있었으나 완전히 복구했다는 내용이다.
구민안제(救民安諸)라면 제방이 파괴되자 다시 쌓아
백성을 구하여 모두 안전하게 했다는 내용이고,
잘 보이지 않으나 공세적○(公稅適○)은 세금을 공평하게 매겨
○○을 적합하게 했다는 내용으로 추정한다.
정조대왕은 팔달산에 화성을 축성하고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을 만들었다.
이 부대는 50명으로 시작하여 점점 증가하여 2만 여명까지 달했다.
이들 군사 양식을 위하여 둔전(屯田)을 조성했고, 이 둔전에 물을 대려고 저수지를 만들었다.
하나는 1795년 수원화성 북쪽에 만석거(萬石渠)를 만들었고,
다른 하나가 바로 서쪽에 축만제(祝萬堤)이다.
이 축만제는 1799년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별칭이 서호(西湖)이고, 지금은 서호공원이라고 불리고 있다.
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고, 수리시설이 되어 있는 축만제 일원에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이라는 농사연구시설을 세웠다.
그 이후 우리나라 농업의 산실인 농총진흥청(農村振興廳)으로 역활을 해왔다.
이곳 축만제(서호) 아래의 농지는 우리나라 벼 농사의
연구의 요람(국립식량과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벼 품종이 만들고, 농사법이 개발되었다.
당시에는 농업국가로서 축만제는 매우 중요한 수리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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