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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인박사상(王仁博士像)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9. 4. 8. 04:30

    왕인박사상(王仁博士像)






    왕인박사상(王仁博士像)



    왕인박사(王仁博士)


    왕인박사는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청으로 논어(論語) 10권과 천자문(千字文) 1권을 가지고 건너가

    한자(漢字)와 학문(學問)을 처음으로 일본에 전해준 성현(聖賢)이다.

    그의 해박한 학식(學識)으로 인하여 일본 군주(日本 君主)의 신임을 받고 태자(太子)의 스승이 되었으며, 

    '學問의 祖上'으로 숭배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일본의 여러 사서(史書)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 일대에는 왕인박사와 관계된 성기동(聖基洞), 성천(聖川), 문산재(文山齋), 책굴(冊窟),

    왕인석상(王仁石像), 돌정고개, 배첩골과 상대포(上臺浦) 등의 사적지(史蹟地)가 있다.

    일본에서는 왕인박사를 가리켜 아쯔카문화(飛鳥文化)의 시조(始祖)라 하며 대은인(大恩人)으로 추앙하고 있다.

    곳곳에 그의 위덕(偉德)을 기리는 묘(墓)와 석비(石碑) 신사(神社) 등을 세워놓고

    추모제사를 올리며 각종 행사들을 성대하게 실시하는 등 그 열기가 대단하다.




    성기동(聖基洞)


    이곳은 성현(聖賢)인 왕인박사(王仁博士)가 탄생한 고장이어서 성기동(聖基洞)이라 일컫는다.

    넓고 아늑한 동남향의 터전으로 현재는 잔디와 건물지즈 초석 들만이 남아있는데

    토성지(土城址)와도 같은 울타리 자리와 높고 낮은 대지(臺地)가 있어 왕인박사의 생가(生家)터라 전한다.

    뒷편 골짜기를 흐르는 성천(聖川)의 큰바위에는 성천(聖川) 조암(槽嵓)이라 음각한 명문이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왕인이 월출산(月出山) 주지봉의 정기를 받아 성기골에서 탄생하여 이곳에서 성장하는 동안

    그의 학문이 나날이 크게 발전하여 유가(儒家)의 성현(聖賢)이 되었다"고 하여

    이후 이곳 성천의 구유바위에서 삼짇날(3월 3일)에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왕인박사와 같은 성현을 낳는다는 풍속이 생겼는데 이러한 풍습이 오늘에까지 전래하고 있다.





    왕인 박사 탄생


    왕인 박사가 성기동에서 갓 태어난 모습이다.

    박사는 월출산 서쪽 자락의 높고 빼어난 문필봉과 주지봉의 정기를 받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왕인 박사의 수학


    왕인 박사가 젊은 시절 서당인 문산재에서 책을 펴 놓고 등잔불 아래서 동문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18세에 오경박사가 됨


    왕인 박사가 18세에 백제 진사왕으로부터 오경박사(五經博士)라는 칭호를 받고 선학(先學)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일본으로 건너감


    왕인 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기술공들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상대포로 가는 도중 돌정고개에서 성기동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에 학문 전수


    왕인 박사가 응신(應神) 천황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태자의 스승이 되어 논어와 천자문 등 학문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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