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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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金正喜 筆 書員嶠筆訣後) - 보물 제1982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2. 21. 19:05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金正喜 筆 書員嶠筆訣後) - 보물 제1982호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서결ㆍ전편』의 자서(自序)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 비판한 글을 행서로 쓴 것이다. 김정희의 친필 원고이자 이광사의 서예 이론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면서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글씨를 연마하는 데 있어 금석문 고증의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은 우리나라 서예이론 체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이는 김정희의 서론(書論)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며, 추사체(秋史體)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행서는 조선 말기 서예를 대표할 만한 격조를 보여준다. 서첩에 수록된 3점의 수묵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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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필 침계(金正喜 筆 梣溪) - 보물 제1980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2. 18. 19:56
김정희 필 침계(金正喜 筆 梣溪) - 보물 제1980호 ‘김정희 필 침계’는 분당지에 예서(隸書)로 쓰고 비단으로 장황(粧䌙)한 횡피(橫披)의 형태이다. 화면 오른쪽으로 치우쳐 ‘침계(梣溪)’ 두 글자를 쓰고, 왼쪽에는 8행에 행마다 9~12자씩 모두 86자의 발문을 행서로 썼으며, 두 방의 백문인(白文印)을 찍는 등 격식을 완전하게 갖춘 작품이다. 침계(梣溪)는 김정희의 친구 윤정현(尹定鉉)의 호(號)이다. 화면 왼쪽에 있는 발문(跋文)의 내용에 의하면 윤정현이 김정희한테 자신의 호를 써 달라고 부탁했으나 한나라 예서에 ‘침(梣)’자가 없기 때문에 30년간 고민하다가 해서ㆍ예서를 합한 서체로 써 주었다고 한다. 해서(楷書)와 예서(隸書)의 필법을 혼합해서 쓴 ‘침계’는 김정희의 자유분방한 개성이 돋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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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필 난맹첩(金正喜 筆 蘭盟帖) - 보물 제1983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2. 9. 19:25
김정희 필 난맹첩(金正喜 筆 蘭盟帖) - 보물 제1983호 ‘김정희 필 난맹첩’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묵란화(墨蘭畵) 16점과 글씨 7점을 수록한 서화첩으로,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粧䌙師) 유명훈(劉命勳)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글씨 뿐 아니라 사군자(四君子)에도 능했던 김정희는 관련 작품을 여럿 남겼지만 난맹첩처럼 묵란만 모은 사례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난의 형상을 다양한 구도와 모습으로 구현했으며 김정희가 추구한 사란법(寫蘭法)에 입각해 개성적인 필묵법(筆墨法)을 구사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화면에 쓰인 제시(題詩)역시 난(蘭)에 관한 고사(故事)와 난 그림에 능했던 중국의 인물들, 난의 속성 등에 관한 것으로, 문사철(文史哲)에 해박했던 김정희의 학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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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개성적인 서체, 추사체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2. 8. 19:13
김정희의 개성적인 서체, 추사체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옛 글씨를 연구하여 추사체(秋史體) 만들었습니다. 그의 글씨는 평생 변화했기에 추사체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핵심은 중국 서한(西漢) 시대의 글씨를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당시 서한시대의 글씨는 100여 자 밖에 전하고 있지 않아서 그는 비석을 연구하여 서한시대 글씨의 특징을 알아냈고, 마침내 전하지 않는 글씨까지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추사체는 옛 글씨의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인 글씨입니다. 처음 보는 글자체였기에 사람들은 놀랐고, 김정희가 억지로 만들어 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씨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실현한 고증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희가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