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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판전(奉恩寺 板殿)과 현판(懸板)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3. 6. 04:30
봉은사 판전(奉恩寺 板殿)과 현판(懸板)
봉은사 판전 현판 또는 봉은사 김정희서판전 현판(奉恩寺 金正喜書板殿 懸板)은
조선 19세기 전반의 대표적 문인서화가 김정희가 만년에 쓴 봉은사 판전의 현판 필적이다.
봉은사 판전 현판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죽기 사흘 전에 쓴 ‘판전’이란 편액이 걸린 곳으로 유명하다.
마지막 순간에 추사가 심혈을 기울여 쓴 판전 글씨는 추사체의 완성이라 할 만큼 중요한 유물이다.
숭유억불 시대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자 유학자로 칭송받은 김정희는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 글씨를 남기게 됐을까?.
그 대표적인 문화재가 봉은사 판전 현판이다. 사실 김정희 집안은 대대로 불교와 인연이 깊었다.
화암사를 원찰로 둘 정도로 불교와 관계가 돈독했다.
부친 김노경은 당대 최고 선지식이었던 대흥사 해붕스님과 교유했다.
집안 영향으로 추사는 이른 시기부터 스님들과 교유했으며, 만년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다녀온 이후
경기도 과천에 은거하며 자연스럽게 인근의 봉은사 스님들과 교분을 쌓았다.
당시 봉은사는 주지 호봉응규 스님을 중심으로 화엄경을 판각하는
판전 불사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추사가 그 현판을 쓴 것이다.
봉은사 판전(奉恩寺 板殿)은 1856년에 창건되고 1878년 중수된
단층 맞배집 목조 건축물로, 봉은사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건물 내에 봉안되어 있는 ‘경기좌도광주수도산봉은사화엄판전신건기(京畿左道廣州修道山奉恩寺華嚴板殿新建記)’ 및
‘화엄판전번와축장중수록(華嚴板殿燔瓦築牆重修錄)’과 2012년 수리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화엄판전상량문(華嚴板殿上樑文)’ 등을 통해 창건 및 중수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본 건물은 경판을 보관하는 장경각(藏經閣)인 동시에 예불을 드리는 불전(佛殿)으로,
경판보관 및 예불 기능을 병용하기 위하여 독특한 창호 구성을 갖추는 등 건축적 희소성이 있다.
봉은사 판전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25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봉은사 판전 현판(奉恩寺 板殿 懸板)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3호
이 현판은 조선 후기 문인서화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쓴 것이다.
1856년(철종 7)에 영기(永奇)스님이 새긴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 등의 경판(經板)을
봉은사에 안치하기 위해 법당을 지었다. 이 현판의 크기는 세로 77cm, 가로 181cm이다.
김정희는 1852년(철종 3)에 북청(北靑)의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과천(果川)에 있는 과지초당(瓜地艸堂)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봉은사를 왕래하다가 1856년 10월 10일에 별세하였다.
이 현판은 그가 별세하기 사흘 전에 썼다고 전해진다.
이 현판의 글씨는 어리숙하면서도 굳센 필세를 드러낸다. 특히 ‘전(殿)’자의 왼삐침을 곧게 내려 누른 점이 돋보인다.
말미에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 71살 과천 늙은이가 병중에 쓰다)’이라고 낙관하였다.
‘과(果)’자는 김정희가 과천에 머물던 때의 별호(別號)인 과로(果老), 과옹(果翁)을 의미한다.
꾸밈이 없는 졸박(拙樸)한 글씨에서 김정희 말년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심상(心想을) 엿볼 수 있다.
봉은사 대웅전에 걸린 현판도 김정희가 쓴 것이다.
봉은사 판전(奉恩寺 板殿)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25호
봉은사 판전 주련(奉恩寺 板殿 柱聯)
佛智廣大同虛空(불지광대동허공) 부처님의 지혜는 허공 같이 크고 넓어
普徧一切衆生心(보변일체중생심) 모든 중생 마음에 널리 두루 하시고
悉了世間諸妄想(실료세간제망상) 세간의 모든 망상 모두 다 아시나
不起種種異分別(불기종종이분별) 갖가지 다른 분별 일으키지 않는다네.
一念悉知三世法(일념실지삼세법) 한 생각에 삼세법 모두 다 아시고
亦了一切衆生根(역료일체중생근) 모든 중생 근기 또한 모두 잘 아신다네.
조류보호망(鳥類保護網)
아름답게 단청된 문화재에 새들이 집을 짓거나 배설물로 인해 훼손됨을 방지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망으로
방조망(防鳥網), 귀갑망(龜甲網) 등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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