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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사 김정희 선생(秋史 金正喜 先生)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7. 5. 10. 22:30

    추사 김정희 선생(秋史 金正喜 先生)

     

     

     

     

     

     

     

     

     

    추사 김정희 선생(秋史 金正喜 先生)

     

    추사 김정희선생은 17866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의 증손이며, 이조판서 김노경(金魯敬)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입양되었다.

    선생은 조선왕조 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로 벼슬은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으며

    당시의 당쟁에 휩쓸려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0여 년간 유배생활을 지내다

    말년에 생부 김노경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71세를 일기로 18561010(철종7)에 작고하였다.

    선생은 단순한 예술가에 그치지 않고 시대사조의 구문화 체계를 탈피하여 신지식의 기수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 들여 신문화 전개를 가능하게 한 실학자인 동시에 선각자(先覺者)이기도 하다.

    선생은 북학파의 거벽(巨擘)으로 청조의 고증학풍(考證學風)을 도입하여 학문으로는 경학(經學), 금석학(金石學),

    문자학(文字學), 사학(史學), 지리학(地理學), 천문학(天文學)에 이르기까지 박통(博通)하였고,

    북한산 기슭의 비석이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巡狩碑)임을 고증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완당집(阮堂集),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綠),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

    완당척독(阮堂尺牘), 담연재시집(覃揅齋詩集) 등이 있다.

    이와 같이 넓고 깊은 학문과 천부의 재질을 바탕으로 한 추사의 예술은 시(), (), (), 전각(篆刻) 등에도 뛰어났으며

    서도(書道)는 추사체(秋史體)라는 독자일문(獨者一門)을 열어 서예사상 지고의 경지를 이룩하였다.

    작품으로는 묵란도(墨蘭圖), 묵죽도(墨竹圖)와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 등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 연보

     

    1786. 6. 3. 충남 예산 향저(신암면 용궁리)에서 출생

    1791. 1. (6) 박제가 선생이 추사의 입춘첩을 보고 장차 크면

    이 아이를 가르치고 싶다고 함

    1792. (7) 채제공 선생이 추사의 입춘첩을 보고 글씨로 이름날 것을 예언함

    1793. (8) 김노영의 양자로 들어감

    1809. 10. 28. (24) 생부 김노경이 동지 겸 사은부사가 되어 연행 때

    추사가 자제군관으로 수행함

    1809. 11. 9. (24) 생원시에 일등으로 급제함

    1816. 7. (31)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순수비를 확인함

    1817. 6. 8. (32) 조인영과 북한산비를 다시 찾아 비문을 낱낱이 조사함

    1819. 4. 25. (34) 문과 급제

    1823. 8. 5. (38) 규장각 대교(待敎)가 됨

    1826. 6. 25. (41) 충청우도 암행어사가 됨

    1827. 10. 4. (42) 예조참의가 됨

    1836. 7. 9. (51) 병조참판이 됨

    1839. 5. 25 (54) 형조참판이 됨

    1840. 9. 2. (55) 윤상도 옥사사건으로 당쟁에 몰려 제주도 유배(8년간)

    1844. (59) 세한도 제작

    1848. 12. 6. (63)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남

    1851. 7. 2. (66) 진동조례론의 배후 발설자로 지목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1년간)

    1852. 8. 13. (67) 북청 유배에서 풀려남

    1956. 10. 10. (71) 경기도 과천에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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