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安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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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長安門) - 수원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11. 16. 21:11
장안문(長安門) - 수원 화성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북쪽문이다. 정조는 장안의 의미를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는 현륭원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라고 풀이했다. 문 밖의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장안문은 남쪽문인 팔달문과 더불어 화성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2층의 누각은 네 모서리 추녀가 길게 경사를 이루면서 용마루와 만나는 우진각 지붕 형태다. 길고 휘어진 목재를 구하기 힘든 조선 시대에 우진각 지붕은 궁궐이나 도성의 정문과 같은 건물에만 쓰였다. 문루 처마 밑에는 다포라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받침 목재를 짜 맞췄는데, 다포식 건물은 18세기 이후 궁궐에서도 거의 백 년 동안 짓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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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長安門) -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9. 12. 19:26
장안문(長安門) - 화성 장안문(長安門) - 화성 * 1974년(정조 18) 창건. * 한국전쟁 때 문루 파괴. * 1975년 문루 복원.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북문이다. 정조는 장안의 의미를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는 현륭원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라고 풀이했다. 문 밖의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장안문은 남문인 팔달문과 더불어 화성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2층의 누각은 네 모서리 추녀가 길게 경사를 이루면서 용마루와 만나는 우진각 지붕 형태다. 길고 휘어진 목재를 구하기 힘든 조선 시대에 우진각 지붕은 궁궐이나 도성의 정문과 같은 건물에만 쓰였다. 문루 처마 밑에는 다포라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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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長安門) - 사적 제3호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7. 29. 04:10
북옹성(北甕城) 북옹성은 장안문 바깥에 반달 모양으로 쌓은 성으로, 성문을 이중으로 지키는 시설이다. 출입문을 옹성 한가운데 내서 출입하기 편하도록 했다. 조선 시대에 만든 여러 성곽에도 옹성이 설치되어 있지만 출입문을 중앙에 만든 사례는 장안문과 팔달문이 유일하다. 문 위에는 물을 저장하는 오성지(五星池)를 설치하여 화공에 대비했다. 오성지는 화성에만 설치한 색다른 방어시설로서 정약용이 제안했으나 설계안대로 시공되지 못했다. * 오성지 : 다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물을 담는 통 * 1795년(정조 19) 창건, * 1975년 수리 오성지(五星池) 적의 화공(火攻)에 대비하여 성문 위에 만들어 놓은 수조(水槽). 벽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다섯 개의 구멍을 내어 물이 흘러내리게 되어있다. ‘북옹성’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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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의 성혈과 총탄흔적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9. 11. 19. 18:53
장안문(長安門)의 성혈(性穴) 장안문은 우리나라의 성문 중에서 가장 큰 문이다. 정조가 장안문을 이렇게 크게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장안(長安)’이라는 말은 나라의 도읍을 의미한다. 수원 화성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했던 정조로서는, 이곳 화성을 도읍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나 아니었을까? 그런 장안문은 참으로 견고한 성문이다. 장안문의 안쪽에 보면 성문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받침돌인 기단이 있다. 성 안에서 성문을 바라보고 좌측 기단에 보면 10여 개가 넘는 성혈이 있다. 화성이 축성 된 후 사람들은 장안문에 와서 기단석에 성혈을 판 것이다. 화성의 4대문 가운데도 가장 큰 장안문, 그리고 그 성문을 받치고 있는 기단석. 그곳에 성혈을 판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는 그 장안문처럼 웅장하고 단단한 아들을 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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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長安門) - 수원 화성(水原 華城)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9. 10. 7. 19:23
장안문(長安門) - 수원 화성(水原 華城) 수원 화성에는 동서남북으로 남문(팔달문), 서문(화서문), 북문(장안문), 동문(창룡문) 4개의 성문이 있다.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城)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으나, 그러나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2칸의 다포 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 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가 설치되어 있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수(隋), 당(唐)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西安) 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