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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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산향교(慶山鄕校)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6. 6. 20:05
경산향교(慶山鄕校) - 대성전, 내삼문 이 향교는 고려 공양왕(恭讓王) 2년(1390)에 옥곡동에 창건(創建)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어 1681년에 신교동으로 옮겼다. 1911년에는 경산공립보통학교(경산초등학교) 설립으로 인하여 향교의 여러 건물이 해체되었으며, 1997년 도로 확장공사로 대성전(大成殿)과 내삼문(內三門), 그리고 사주문(四柱門)만 현 위치로 다시 옮기게 되었다. 본래 향교는 제향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있고 고을의 크기에 따라 동무(東廡), 서무(西廡)가 있기도 하며, 강학 공간에는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다. 1998년부터 이건 복원계획에 따라 새로이 제향 공간의 동무(東廡), 서무(西廡)와 강학 공간인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 서재(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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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선성현 객사(宣城縣 客舍)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5. 7. 20:10
선성현 객사 이전 중수비(宣城縣 客舍 移轉 重修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선성현 객사(宣城縣 客舍) 선성현 객사는 조선 숙종 38년(1712)에 예안현감(禮安縣監) 김성유(金聖遊)가 고쳐 지은 건물로 조선시대 객사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객사 중앙에는 정당이 있는데, 이곳에서 초하루와 보름에 전패를 모시고 궁궐을 행해 절을 하였다. 양쪽에 있는 건물은 사신(使臣)이나 관리(官吏)들의 숙소로 사용하였다. 정면 5칸, 옆면 3칸이며 정당의 지붕은 양쪽에 붙어있는 건물보다 다소 높다. 양쪽에 있는 객사는 정면 3칸, 옆면 3칸 모두 6칸의 대청에 1칸씩 툇마루가 있다. 안동댐 건설로 1976년에 도산면 서부리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 객사(客舍) : 고려,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여 외국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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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월영대(月映臺)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8. 21:11
移轉 重修碑(이전 중수비) 문화재명 : 月映臺 지정종별 : 경북지방 유형 제22호 원위치 : 안동군 임동면 사월동 이전 연월일 : 서기 1976년 6월 2일 이전사유 : 본 문화재는 안동댐 건설에 의하여 수몰되므로 이를 안전하게 보존키 위해 이전 중수하였음 시공자 : 삼부토건 주식회사 시공청 : 안동군 월영교(月映橋)와 월영정(月映亭) 이 다리는 바닥과 난간을 목재로 만든 인도교로써 폭 3.6m, 길이 387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출품한 응모작 322점 중에서 '월영교'를 선정하였으며, 유난히 달(月)과 연관이 많은 이 지역의 유래에서 착안되었다. 이곳 안동댐 유역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명칭이 '달골'이었으며 다리를 건너면 바로 '엄달골' 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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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8. 6. 19:39
의성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義城 石塔里 方壇形 積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불규칙한 모양의 자연석을 쌓아 만든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탑에 대한 기록은 물론 주변에 관한 기록도 전하지 않는다. 탑은 건물터 만큼 넓게 낮은 단을 마련하여 그 위에 계단모양의 층단을 만들었다. 1, 2단에 걸쳐 네 면에 목탑에서처럼 감실(龕室)을 파서 불상을 모셔두었다. 현재 윗부분이 무너져 원래 몇층이었는지 알 수 없고, 기단과 탑신의 구분도 애매한 독특한 형식의 탑이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1길 141-14 (석탑리) 자료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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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관(雲鳳館)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6. 25. 04:11
운봉관(雲鳳館)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운봉관은 세종 10년(1428년)에 청송군수였던 하담(河擔)이 찬경루(讚慶樓)와 함께 건축한 것인데, 객사(客舍)로 사용하였다. 선조(宣祖) 때 한차례 손보고 고쳤으며, 숙종 43년(1717)에 부사 성환(成瑍)이, 순조 12년(1812년)에는 부사 강휘옥(姜彙鈺)이, 고종 8년(1871)에 부사 윤현기(尹顯岐)가 각각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객사는 고을에서 가장 권위가 있던 건물이며,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의 사신들이 머무는 공공 숙박의 기능을 한다. 그리고 객사의 중당(中堂)에는 임금의 전패(殿牌)를 모셔놓고 출장 중인 관원과 고을의 부사(府使)가 임금께 예를 올렸다. 특히 이곳 운봉관은 명성황후 시해사건(明成皇后 弑害事件)과 단발령(斷髮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