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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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방아 – 고려대학교 박물관일상생활속에서/우리의 옛 것들.. 2022. 1. 8. 19:15
연자방아 – 고려대학교 박물관 연자방아는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데 쓰는 도구로 연자매(硏子磨)라고도 한다. 둥글고 판판한 큰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돌을 옆으로 세워 이를 소나 말이 끌도록 고안되었다. 아랫돌과 윗돌이 적당히 물리도록 조절한 뒤, 판 위에 찧고자 하는 곡식을 넣고 소나 말을 이용하여 둥근돌을 굴려 껍질을 벗겨낸다. 보통 한 사람이 소나 말의 고삐를 잡고 앞에서 몰고, 다른 사람이 그 뒤를 따르며 넉가래로 곡식을 뒤집어 곡식을 도정, 제분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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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支石墓, 지석묘) - 고려대학교 박물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7. 19:10
고인돌(支石墓, 지석묘) 이 고인돌은 주암댐 수몰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 계획의 일환으로 전남 보성군 문덕면 봉갑리, 보성강 유역의 돌출된 낮은 구릉의 말단 부분에 14기가 군집 분포되어 있던 것을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987년 8월에 발굴 조사하였다.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것으로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이 올려져 있는 형식이다. 출토유물로는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어 학술연구에 중요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는 발굴조사된 이 고인돌들을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1989년 10월 30일부터 이곳에 이전 전시하고 있다. 고인돌(支石墓, 지석묘) 고려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팀은 1986년 12월 1일부터 1987년 1월 6일까지 고인돌 16기가 군집되어 있는 보성강 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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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카테고리 없음 2022. 1. 4. 21:09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본교를 두고 있는 명문 사립 종합대학. 한국 최초의 민간인에 의한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으로 대한제국 시기인 1905년 이용익이 설립한 보성전문학교가 모체이다. 1932년 인촌 김성수의 중앙학원이 학교를 인수하여 고려대학교의 기반을 마련했다. 교훈은 '자유·정의·진리'이다. 2018년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국내 사립대학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인 86위를 기록했다. 본교는 서울시 성북구에, 분교인 세종캠퍼스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소재한다. 2022년 기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에는 경영대학과 생명과학대학, 공과대학, 보건과학대학, 문과대학, 정경대학, 이과대학, 사범대학, 간호대학, 정보대학, 디자인 조형학부, 자유전공학부, 심리학부, 국제학부, 미디어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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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석(文人石) - 고려대학교 박물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30. 19:08
문인석(文人石) - 고려대학교 박물관 조선시대 석물을 대표하는 것은 문인석이다. 각종 문헌자료에 석인(石人)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부분 문인석을 의미한다. 문인석은 시기마다 양식과 규모가 다양하게 변화 발전하면서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문인석은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왕릉(王陵)이나 원(園), 시대부 묘(士大夫 墓) 등 능묘 앞 좌우에 능의 주인을 지키는 의미로 세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이 문인석은 15~16세기 작품들로 조선 전반기 석물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관복을 하였을 때 손에 드는 手板)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이 문인석은 북두공복(北斗公服-관리의 평상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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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선생 추모비(仁村 金性洙 先生 追慕碑)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28. 20:07
仁村 金性洙 先生 追慕碑(인촌 김성수 선생 추모비) 인촌 김성수선생 추모비(仁村 金性洙先生 追慕碑) 선생의 호는 인촌(仁村)이요, 본관은 울산(蔚山)이니 조선조 중종 때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의 13대손으로 1891년 10월 11일(음력 9월 9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인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국권을 빼앗긴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도 항상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면서 우리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고 굳건하게 키우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애국자요 선각자였다. 선생은 교육자, 언론인, 기업가, 정치가로서 크나큰 공적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참된 민족정신과 지도자를 육성하는 교육사업에 가장 큰 정성을 기울였다. 儒學(유학)의 전통이 깊은 명문의 후예로서 선생은 일찍이 신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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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고려대학교 본관(史蹟, 高麗大學校 本館)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26. 20:10
청운의 꿈을 품고 와서 영원한 우정을 남기노라. 1960년 4월 18일 4월혁명의 도화선, 이곳에서 타오르다. 4.18 선언문 친애하는 고대 학생 제군! 한 마디로 대학은 반항과 자유의 표상이다. 이제 질식할 듯한 기성 독재의 최후적 발악은 바야흐로 전체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기에 역사의 생생한 증언자적 사명을 띤 우리들 청년학도는 이 이상 역류하는 피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만고 이와 같은 극단의 악덕과 패륜을 포용하고 있는 이 탁류의 역사를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의 영원한 저주를 면치 못하리라. 말할 나위도 없이 학생이 상아탑에 안주치 못하고 대사회 투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오늘의 20대는 확실히 불행한 세대이다. 그러나 동족의 손으로 동족의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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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 오층석탑(安岩洞 五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26. 19:15
안암동 오층석탑(安岩洞 五層石塔) 이 탑은 고려 중기의 탑으로 높이는 5.55m이다. 단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으로 구성된 석탑으로 재질은 화강암이다. 기단부의 하대석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고 상대 갑석(上臺 甲石)은 4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하나의 돌로 제작되어 층단을 이루고 있다. 옥개석의 낙수면 경사각이 완만하고 전각에서 약간의 반전을 보이고 있다. 2층 탑신과 기단부 면석 3매는 후대에 복원하였다. 원래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원당국민학교에 소재했으나 1986년 10월 27일 고려대학교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법학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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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仁村 金性洙 先生 銅像)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24. 20:16
銅像(동상) 高(고, 높이) 3.424m 金景承 彫刻(김경승 조각) 閔福鎭 助手(민복진 조수) 銅像建立文(동상건립문) 校友會長 李丙壽 撰(교우회장 이병수 찬) 財團 主務理事 李活 書(재단 주무이사 이활 서) 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 건립문(仁村 金性洙 先生 銅像 建立文) 민족 자립의 대본(大本)이 첫째 교육에 있음을 깨닫고 일제의 억압과 싸워가며 이 사업을 완수한 이는 곧 인촌 김성수 선생이었다. 선생의 사업이 허다(許多)하지만 특히 교육은 그가 지상 사명으로 삼아 물심을 기울여 일생을 여기에 바쳤던 것이다. 선생은 본시 고창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마치고 돌아오자 단기 4248년(1915년) 중앙학교를 맡아 일익 확장(日益擴張), 다시 그 경영을 반석 위에 놓고자 4262년(192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