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 공북루(公山城 拱北樓) - 유형문화재 제37호 공산성의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통로로 이용되었다. 1603년(조선 선조 36년)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세우면서 이 자리에 있던 '망북루'를 다시 지어 '공북루'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아래는 성으로 통하는 통로이며..
공산성 공산정(公山城 公山亭) 공산성 서북쪽 산마루에 있는 누각이다. 이곳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금강교(등록문화재 제232호)등 공주의 전경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금강의 낙조(落照)와 야경(夜景)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누각의 명칭은..
제민천교 영세비(濟民川橋 永世碑) 1817년(순조 17) 제민천이 대홍수로 범람하고 제민천교가 붕괴되자 이를 재 건립한 사실을 기리는 비석이다. 비문에는 1817년 여름 홍수로 다리와 둑이 무너지자, 다리의 복구를 8월에 마치고 하천의 둑을 고쳐쌓은 일은 이듬해인 1818년 4월에 모두 완료하..
공산성 쌍수정(公山城 雙樹亭) - 문화재자료 제49호 1734년(영조 10년) 에 관찰사 이수항이 인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자이다. 인조는 이괄의 반란(1624년)을 피하여 공주로 피난을 와 6일간 공산성에 머물렸는데, 인조는 이곳에 서있던 두 그루의 나무(雙樹)밑에서 반란이 진압되기를 기다..
공산성 진남루(公山城 鎭南樓) 공산성의 남문으로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조선 초기에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세운 문루이나, 그 뒤에도 여러 차례 고쳐지었는데 지금의 건물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높은 축대 위에 앞면 3칸, 옆면 2칸 ..
공산성(公山城) 영은사(靈隱寺) - 전통사찰 제2호 조선 세조4년(1458)에 세워진 사찰이다. 묘은사로 불렸다가 이괄의 난(1624년) 때에 이절에 피신한 인조가 은적사라 하였다가 다시 영은사로 고쳤다. 광해군 8년(1616년)에는 이곳에 승장(僧將)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관할하였다고 한다. 임진왜..
공산성(公山城) 금서루(錦西樓) 공산성(公山城) 4개의 성문 가운데 서쪽에 위치한 문루이다.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가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 등의 문헌 기록과 동문 조사 자료 및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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