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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산성 공산정(公山城 公山亭)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5. 21. 05:30

    공산성 공산정(公山城 公山亭)


    공산성 서북쪽 산마루에 있는 누각이다.

    이곳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금강교(등록문화재 제232호)등 공주의 전경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금강의 낙조(落照)와 야경(夜景)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누각의 명칭은 유신대(維新臺), 전망대 등으로 불려오다가 2009년 시민들의 공모를 통해 공산정(公山亭)이라 지어졌다.


    = 충남 공주시 웅진로 280 (금성동) 공산성 =












    지켜지지 않은 세 나라의 약속, 취리산 회맹


    "취리산 회맹이 뭐예요?"

     "백제가 멸망한 지 5년이 되는 665년 신라 문무왕, 웅진도독 부여융, 당나라 사신 유인원 세 사람이

    공주 취리산에 함께 모여 앞으로 서로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며 맹세한 일이 있었답니다.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취리산은 공주 생명과학고 뒷산인 취미산이라고 합니다."

    "삼국의 대표는 그곳에서 어던 약속을 했나요?"

     "세 나라가 언제나 형제처럼 사랑하고 고난이 닥쳤을 때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하자고 맹세했지요.

    이렇게 맹세한 서약문은 신라 종묘에 보관했어요"

    "그렇지만 그 약속이 진심이었을까요?"

    "맞아요." 각자 다른 속마음이 있었어요.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집어 삼키려는 야욕을 갖고 있었고,

    신라는 백제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하게 하고, 당나라도 몰아내고 싶었어요.

    또 백제는 멸망한 나라를 되찾고 싶었던 거예요. 결국 친하게 지내자는 약속은 깨지고 말았답니다.







    서거정과 공주10경


    서거정은 우리나라의 옛 시와 글을 모아 역어 “동문선”을 편찬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집현전 학사 시절 공주로 여행을 와서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빠져 “공주10경”이란 시를 지었어요.

    금강의 불놀이, 고마나루의 밝은 달 등을 주제로 공주의 배어난 운치를 시로 표현했지요.

    또 인조 때 공주목사 신유도 공산성의 공북루, 영은사, 고마나루 봉황산 등의 아름다움을 “공주 신10경”이라는 시로 지어 남겼습니다.

    사람과 시대는 바뀌었어도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공산성의 절경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공주 금강철교 - 등록문화재 제232호

     

    1933년에 준공한 이 철교는 경성과 목포를 잇는 1등도로 구간 내에서  중요한 지역이었던
    공주읍과 장지면을 연결하기 위해 건설한 시설물로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당시 철교는 대부분 전국적으로 철도교(鐵道橋)로 건설하였으나 금강철교는 도로교(道路橋)로 건설해 그 예가 드물며,

    와렌 트러스 구조의 상현재를 곡현 아치 형태로 굽힌 디자인은 당시 교량 건설사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6·25전쟁 때 2/3 정도 파괴되었으며 1952년에 복구하였다.



    배다리와 금강철교


    공주가 발전하면서 금강을 건너는 사람들과 물자가 크게 늘어나

    나룻배로는 도저히 이들을 다 실어 나를 수 없어 나무로된 다리를 놓았지만 이것마저도 홍수에 떠내려 가고 말았어요.

    그래서 만든 것이 배다리예요.

    나룻배 20-30척을 잇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폭 3m, 길이 150m로 배다리를 놓았어요.

    하지만 배다리도 큰 홍수와 오랜 세월을 견디기 힘들었대요.

    마침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가는 대가로 금강에 다리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금강 철교입니다.

    금강철교는 그 때부터 금강철교는 공주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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