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 산불됴심 표석(鳥嶺 산불조심 標石) 표석의 설치 연대는 대체적으로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추형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된 순수 한글비석이다. 현재 문화재 위치는 처음 세워질 당시의 장소로 보여지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산불예방과 주흘산(主屹山)의 자연..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주흘관(主屹關) - 사적 제147호 문경새재에 있는 3관문 가운데 하나인 주흘관은 영남제일관이라고 불리우는 성문으로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문은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해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되었고, 구한말 항일의병 전쟁 때에 일본군이 불태웠던 궁..
문경새재 옛길보존기념비를 건립하며 1978년 11월 24일 문경새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 옛길을 포장하려던 경북도지사(김성배 지사)의 계획에 대하여 '새재 안에 버스나 승용차를 출입시키면보존 관리가 어려울 것이니 관문 밖을 포장하여 그 주변에 정류장을 만들어 주차시키도..
문경새재 주막(酒幕) 새재(鳥嶺)는 조선시대에 영남에서 한양으로 오가던 가장 큰 길로서, 이 주막은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 길로 오르던 선비들, 거부의 꿈을 안고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등 여러 계층의 우리의 선조들이 험준한 새재길을 오르다 피로에 지친몸을 한 잔의 술로써 여독을 ..
영남제2관(嶺南第二關), 조곡관(鳥谷關) - 사적 제147호 이 관문은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聞慶 鳥嶺)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축성 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조선(朝鮮) 선조(宣組) 25년(1592) 왜란(倭亂)이 일어난 후..
문경새재 교귀정(交龜亭)과 교귀정 소나무 교귀정(交龜亭) 교귀정은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 구 경상감사가 엄무를 인계인수 하던 교인처(交印處)로 1470년경(성종 초)에 건립되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896년 3월(건양 1년) 의병전쟁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폐허로..
조령원터(鳥嶺院址)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주흘관)과 2관문(조곡관)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을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문경새재는 과거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는 길목에 위치하여 수많은 길손들이 오고가는 중요한 통..
상처난 소나무(문경새재) V 모양의 이 상처는 일제말기(1934년~1945년)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송진(松津, 松脂)을 채취한 자국으로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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