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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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淸道邑城) - 경상북도 기념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8. 15. 04:08
청도 선정비군(淸道 善政碑群) 북문 공북루(拱北樓) 서문 무회루(撫懷樓) 청도읍성(淸道邑城) - 경상북도 기념물 읍성 면적 : 6,570㎡ 청도읍의 중심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면이 사각형 형태이다. 규모를 살피기에는 너무 훼손되어 있어 잘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의 문헌에 의하면 성벽은 길이 1,570보(약 1.9㎞), 높이 5척 5촌(약 1.65m)이었다고 한다. 화강석을 깨뜨려 기초부는 큰 돌로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섞어 가면서 흩어쌓기식으로 쌓았으며 협축법(夾築法)을 사용하였다. 지금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성벽은 동문지(東門址) 부근으로 성벽의 기초부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데 높이는 대략 1m 정도이고 길이는 10m 정도이다. 성곽의 축조연대는 1590년(선조 23)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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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8. 27. 19:33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 이순신이 1587년(선조 20) 함경도 조산보 만호(造山堡 萬戶) 겸 녹둔도 둔전관(鹿屯島 屯田官)으로 있을 때 기습 침입한 여진족을 쫓아 포로로 붙잡힌 농민과 병사를 구했던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까지 함경도 지방에서 무공을 세운 인물 8명의 행적을 담은 북관유적도첩(北關遺蹟圖帖)의 한 장면이다. 북관유적도첩는 총 여덟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탁경입비(拓境立碑), 야연사준(夜宴射樽), 야전부시(夜戰賦詩), 출기파적(出奇破賊), 등림영회(登臨詠懷), 일전해위(一箭解圍), 수책거적(守柵拒敵), 창의토왜(倡義討倭) 이다. 발포 만호(鉢浦 萬戶)에서 파면된 5개월 후 훈련원 봉사로 복직한 이순신은 그 후 함경병사 병방권관을 거쳐 건원보 권관으로 다시 북방 최일선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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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 - 보물 제162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9. 19:48
늙은 소 힘쓴 지 이미 여러해(老牛用力 已多年, 노우용력 이다년) 목 부러지고 가죽 헤어져 잠자기만 좋아하네(領破皮穿 只愛眠, 영파피천 지애면) 쟁기질, 써레질 이미 끝나고 봄비도 충분한데(犁耙已休 春雨足, 이파이휴 춘우족) 주인은 어찌하여 괴롭게도 또 채찍을 가하네(主人何苦 又加鞭, 주인하고 우가편)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 - 보물 제1627호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는 선조(宣祖)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가 큰 글자로 쓴 칠언절구의 시이다. 종이바탕에 4행으로(각행 7자) 썼으며 근대에 족자로 장황되었다. 어필 아래에는 서예가 배길기(裵吉基)의 1966년 발문이 있다. 바탕은 보존이 양호한 편이며 다만 줄[行] 사이가 좀 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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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량 밀부유서 (申汝樑 密符諭書) - 보물 제1938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1. 16. 19:06
신여량 밀부유서 (申汝樑 密符諭書) - 보물 제1938호 이 문서는 1605년(선조 38)에 선조가 행전라우도수군절도사(行全羅右道水軍節度使)로 부임하는 신여량(申汝樑)에게 발급한 밀부유서(密符諭書)이다. 유서는 당시 관찰사, 절도사 등 군사 지휘권을 가진 지방관에게 발급되는 명령서이다. 이 유서에는 신여량이 수행해야 할 임무, 군사동원 시 임금이 내린 증표를 확인할 것, 제17부라고 새겨진 증표를 내린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밀부유서는 임진왜란 이후 국왕의 군사명령 방식과 관원의 임무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희귀한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938호(2017. 5. 8)로 지정되었다. 소재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 (매곡동, 국립광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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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옹주 태실비(貞淑翁主 胎室碑) - 화성시 향토문화재(유형) 제1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8. 29. 04:27
정숙옹주 태실비(貞淑翁主 胎室碑) 정숙옹주(貞淑翁主,1587~1627)는 선조(宣祖, 1552~1608)와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서3녀로 영의정을 지낸 신흠의 아들 평산인(平山人) 동양위 신익성(東陽尉 申翊聖, 1588~1644)과 혼인하여 5남 4녀를 낳았다. 태실은 조선시대 왕실의 자손이 태어나면 태(胎)를 묻고 복을 기원했던 시설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정숙옹주 태실비는 동탄호수공원 제방 북쪽 태봉산(49m) 정상부 남향을 하고 있으며, 태실은 보이지 않고 태실비만 남아 있다. 비는 영봉형 비두에 비좌를 갖추었고, 비두와 비신은 일체형으로 비좌에는 복련과 안상을 새겼다. 태실비의 크기는 비신과 비두를 합한 높이가 183cm, 비신 폭 47cm, 두께 15cm, 비좌 너비 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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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東醫寶鑑) - 국보 제319 -1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6. 20. 19:31
동의보감(東醫寶鑑) - 국보 제319 -1호 동의보감은 허준(許浚,1539∼1615)이 1610년(광해군 2)에 조선과 중국에 유통되던 의서와 임상의학적 체험을 통한 치료법을 엮어놓은 우리나라 최고의 한의서이다. 선조는 1596년에 허준과, 양예수(楊禮壽), 이명원(李命源) 등에게 명하여 의서를 편찬토록 하였으나 전쟁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허준은 14년 동안 정력을 쏟아 1610년에 드디어 완성하였으니 이것이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사람이 찬술한 의서 중에서 최고라는 국내외의 평가를 받고 있다. 초간본은 편찬된 지 3년 후인 1613년(광해군 5) 11월에 내의원에서 목활자로 간행하였으며, 모두 25권 25책이다. 내용은 목록 2권, 내경편(內景篇) 4권 26조, 외형편(外形篇) 4권 26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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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릉(穆陵) - 선조(宣祖) · 의인왕후(懿仁王后) · 인목왕후(仁穆王后)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9. 11. 6. 04:30
목릉(穆陵) - 선조(宣祖)·의인왕후(懿仁王后)·인목왕후(仁穆王后)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1522~1608, 재위1567~1608)는 중종(中宗)의 손자로 제13대 명종(明宗)이 대를 이을 자식이 없이 돌아가시자 선조가 왕위에 올랐다. 선조가 임금의 자리에 있을 때 비록 임진왜란(壬辰倭亂)과 같은 위기가 있었지만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유학을 증진하였기 때문에 훗날 선조의 시대를 지칭할 때 그 능의 이름을 따서 '목릉성세(穆陵盛世)'라고 부르기도 한다. 선조의 첫 번째 비는 의인왕후(1555~1600)이다. 두번째 비는 인목왕후(1584~1632)인데, 의인왕후가 돌아가신 후 1602년(선조 35)에 왕비가 되었으며,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하지만 광해군(光海君)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