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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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옛 사진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11. 30. 19:16
일제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봇대가 늘어선 팔달문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팔달문과 남공심돈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옹성의 홍예문이 훼손된 팔달문 일제강점기,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한국전쟁 이후의 팔달문 1960년대,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현재의 팔달문, 2021년 보물, 수원 팔달문(水原 八達門)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남문이다. 정조는 팔달(八達)의 의미를 ‘산 이름이 팔달이어서 문도 팔달이며, 사방팔방에서 배와 수레가 모인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팔달문 주변은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화성 축성 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장안문과 마찬가지로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규모와 형식은 장안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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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흠의 옛 수원화성 그림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11. 29. 20:14
윤한흠의 옛 수원화성 그림 윤한흠 선생은 1923년 수원에서 태어나 수원과 화성의 아름다움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자신의 기억과 토박이 어르신들의 증언을 토대로 수원화성의 과거 모습을 재현하였다. 전시 작품마다 등장하는 울창한 소나무는 솔씨 2만 섬을 내려 수원화성 곳곳을 푸르게 만들고자 했던 정조의 뜻을 아는 듯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수원화성을 감싸고 있다. 윤한흠 선생은 전문적인 회화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작품을 그렸으며, 작품 하나하나마다 고심의 흔적과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수원화성의 옛 사진들은 많이 남아 있지만 그 시절의 감성과 정취를 알려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윤한흠 선생의 작품에서는 당시의 감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 소개 윤한흠(尹漢欽) :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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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행 산책로(行幸 散策路)수원사랑/문화예술(文化藝術) 2021. 9. 26. 22:11
행행 산책로(行幸 散策路) 문화재청의 세계유산 활용 콘텐츠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2021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를 개최하면서 ‘만천명월(萬川明月);정조의 꿈, 빛이 되다’를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축제는 수원화성의 화서문 일원과 화성행궁을 잇는 행궁동 거리(행궁동 카페거리∼화서문∼장안문)에는 빛의 거리 ‘행행 산책로’를 조성했다. 국왕의 행차는 백성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어야 한다는 정조의 마음을 빛으로 담은 디지털 힐링 산책로로 연출됐다. 3개 테마로 ‘인인화락의 길’, ‘태평성대의 길’, ‘만천명월의 길’로 꾸며지며 다양한 형태의 조명과 정조의 사상을 모티브로 한 빛 조형물 등으로 행궁동 일원을 빛으로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행행(行幸)이란? 국왕의 궁궐 밖 혹은 도성 밖 행차를 일컫는 말이다. 중국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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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포루(東北舖樓)의 야경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7. 4. 20:42
동북포루(東北舖樓)의 야경 포루(舖樓)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동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년(정조 20) 5월 15일 완공되었다. 이곳의 지형은 주변보다 높아서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일명 '각건대(角巾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생김새가 은거한 선비들이 쓰는 모자인 각건(角巾)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포루(鋪樓)와는 달리 치의 밑부분은 돌로, 중간 부분부터는 벽돌로 쌓았다. 3면의 치성이 성 밖으로 18척 5촌(약5.6m) 돌출되었으며, 외면의 너비는 24척(약7.28m)으로 현안(縣眼)을 1개 뚫었다. 누각은 중층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