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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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명부전의 벽화 – 궁예와 임꺽정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21. 7. 10. 04:07
칠장사 명부전(七長寺 冥府殿) 명부전은 고통받는 지옥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원을 세우신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자연석 외벌대 기단, 자연석 초석 위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규모는 40.07㎡이다. 내부는 우물마루를 들이고 정면을 제외한 3면에 불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시왕을 모시고 있다. 측면 3칸 중 양쪽은 협칸이고, 내부 배면부에 대보 밑까지 기둥이 설치되어 있다. 이 명부전은 영조 2년(1726)에 건립하였으며, 그 뒤 철종 7년(1857)에 기와를 중수하였다. 궁예 유년시절 칠장사에는 여러 구전이 내려오는데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가 남아있으며 의적 임꺽정이 갖바치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이야기 등이 있다. 병해대사(갖바치스님)와 임꺽정 칠장사는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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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 - 보물 제162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9. 19:48
늙은 소 힘쓴 지 이미 여러해(老牛用力 已多年, 노우용력 이다년) 목 부러지고 가죽 헤어져 잠자기만 좋아하네(領破皮穿 只愛眠, 영파피천 지애면) 쟁기질, 써레질 이미 끝나고 봄비도 충분한데(犁耙已休 春雨足, 이파이휴 춘우족) 주인은 어찌하여 괴롭게도 또 채찍을 가하네(主人何苦 又加鞭, 주인하고 우가편)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 - 보물 제1627호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는 선조(宣祖)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가 큰 글자로 쓴 칠언절구의 시이다. 종이바탕에 4행으로(각행 7자) 썼으며 근대에 족자로 장황되었다. 어필 아래에는 서예가 배길기(裵吉基)의 1966년 발문이 있다. 바탕은 보존이 양호한 편이며 다만 줄[行] 사이가 좀 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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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오불회 괘불탱(七長寺 五佛會 掛佛幀) - 국보 제296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9. 04:16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七長寺 五佛會 掛佛幀) - 국보 제296호 괘불(掛佛)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칠장사 괘불은 길이 6.61m, 폭 4.07m의 크기로, 구름을 이용하여 상· 중· 하 3단으로 구분되었다. 맨 윗부분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불과 노사나불이 좌우에 모셔진 삼신불을 묘사하고 있고, 중간은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들이 있어 삼세불을 표현하였으며, 맨 아래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그려져 수미산 정상의 도솔천궁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3단 배치는 예배자들에게 삼신불과 삼세불의 세계를 통해 진리를 깨우치게 하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구원으로 도솔천궁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괘불의 가장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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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나한전과 어사 박문수(御史 朴文秀) 합격다리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21. 7. 8. 21:49
박문수가 장원급제한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 조선 중기에 천안에 사는 박문수라는 선비가 과거를 보러갈 때 이야기다. 길을 나서는 날 아침, 어머니는 박문수에게 조청으로 만든 유과 보따리를 손에 쥐어주며 당부하였다. “가는 길에 꼭 칠장사 나한전에 유과를 공양하고 기도를 드려라.” 어머니 말씀대로 박문수는 칠장사에 들러 나한전에 기도를 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어머니의 말씀도 있으셨고 해서 나한전에 유과를 올리고, 나한님께 불공을 드린 후 잠을 청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밤 꿈에 나한님이 나타나서 과거시험의 시제를 알려주며 총 8줄의 답안 중 7줄을 가르쳐주고 나머지 한 줄은 박문수 니가 알아서 써내라 하였다고 한다. 다음날 일어나 한양으로 올라가는 도중 내내 나한님이 가르쳐주신 글과 마지막 싯구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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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安城 奉業寺址 石造如來立像)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6. 21:17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安城 奉業寺址 石造如來立像) - 보물 이 불상은 원래 죽산면 봉업사 터에 있었던 것을 죽산중학교에 옮겼다가 다시 칠장사로 옮긴 것으로 입상과 광배가 동일 석으로 조성된 것이다. 봉업사는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 없지만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봉안하였으며 공민왕이 참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위에 큼직한 육계가 있고 눈, 코, 입은 마모가 심하여 전체적인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원만하다. 양쪽 귀는 길게 표현되어 어깨에 닿을 듯 하며 목의 삼도와 어울려 위엄을 자아낸다. 통견 법의의 옷주름은 여러 겹의 원호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치마옷이 양 다리 사이에서 지그재그 모양을 이루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부분까지 들어 손바닥을 가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