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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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鄕愁) 어린 '정지용 생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21. 04:02
향수(鄕愁) 어린 '정지용 생가' 전형적인 초가집으로 두 채가 한 울타리에 있으며, 정지용(鄭芝溶, 1903~1950)은 이곳에서 17세까지 지내고 서울로 상경하여 교사 생활과 집필 활동을 하였다. 원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졌으나 1988년 정지용 시인의 납북이 정부로부터 인정받고 작품들이 해금되면서 옥천에서 결성된 지용회를 통해서 생가 복원이 논의되었으며, 1996년에 생가지에 초가집 두 채를 복원하였으며, 바로 옆에 정지용 시인의 문학세계를 전시하는 정지용문학관이, 근처에 옥천군립 지용문학공원이 신설되었다. 부엌을 제외하고 정면 2칸은 퇴칸 구조이다. 생가의 전체적인 형상은 'ㄱ‘자 집이며 마주 보이는 방향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一‘ 자형 창고가 있다. 주거용의 'ㄱ‘자 집은 부엌 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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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20. 20:10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하는 곳 명륜당(明倫堂) 내삼문(內三門) 홍도당(弘道堂) 대성전(大成殿) 서무(西廡) 동무(東廡) 명륜당의 온돌 장치, 아궁이와 굴뚝 옥천향교 명륜당의 특징은 공중에 떠 있는 아궁이다 2층 양쪽 교관의 방구들을 데우는 온돌 장치로 열이 아궁이로 빠져나오지 않게 하고 그 열이 가능한 한 구들 공간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굴뚝은 작은 구멍을 내어 처리하였으며 아궁이 주변은 허공인 것이 인상적이다. 아궁이의 불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궁이 면은 낮게 하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 부분은 높게 설치하여 앞에서 뒤로 갈수록 오르는 경사를 이루고 있다. 고직사(庫直舍) 고직사는 옥천향교의 관리사로, 최근 지붕 누수, 처마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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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 - 보물 제1338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19. 20:13
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沃川 龍巖寺 東·西 三層石塔) - 보물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552) 때 의신(義信)이 세운 사찰이다. 이 석탑은 일반적인 가람배치와 달리 대웅전의 앞이 아니라 사방이 한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석탑이 사방의 조망권이 확보된 위치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 비보(山川裨補) 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천 비보 사상이란, 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같은 모양의 석탑 2기는 이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층 기단을 갖추고 있으며, 동탑은 4.3m, 서탑은 4.1m로 규모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서탑의 경우 2층과 3층 탑신의 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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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 생가와 생전의 사진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19. 19:18
옥천 육영수 생가(沃川 陸英修 生家)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 이 가옥은 육영수 여사가 1925년 태어나 1950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으며 흔히 ‘교동댁(校洞宅)’이라 불려졌던 옥천지역의 명문가이다. 1600년대부터 삼정승[김(金) 정승, 송(宋) 정승, 민(閔) 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도지역 상류주택의 양식으로 축조되었다. 그 이후 1918년 육영수 여사의 아버지 종관(鐘寬)씨가 매입하여 건물의 기단을 높여 개축하였는데 각기 독립된 아랫집, 큰집, 윗집, 사당 영역으로 구획하고 담장, 협문,부속건물로 적절히 배치하였다. 1969년 본래의 모습과 다른 현대식 한옥으로 개축하여 사용되어오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퇴락되었고 1999년 철거되었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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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 상(詩人 鄭芝溶 像)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0. 18. 22:13
시인 정지용 상(詩人 鄭芝溶 像)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군 옥천면(현 옥천읍) 하계리에서 부친 정태국(鄭泰國)과 모친 정미하(鄭美河)의 장남으로 출생. 옥천보통공립학교와 휘문고보를 거처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휘문고보에 다닐 때부터 습작 활동을 시작하여 1922년 ‘풍랑몽’을 쓰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시문학, 구인회의 문학 동인파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처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 인민군에 의해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었다. 이후 납북되어 그해 9월 25일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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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부소담악(沃川 扶沼潭岳)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21. 10. 18. 20:18
옥천 부소담악(沃川 扶沼潭岳) 부소담악은 부소무니 마을 앞 물 위에 떠있는 산이라 하여 ‘부소담악’이라 불린다. 2008년 국토해양부가 전국의 하천, 호수, 계곡, 폭포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하천 100곳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환산에서 바라본 부소무니 마을과 그 앞의 부소담악. 마을 언저리 북쪽의 산봉우리가 남동쪽으로 동물 꼬리모양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줄기를 뻗어 내리고 있다. 700m 길이의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을 따라가노라면 다양한 부소담악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부소무니 마을에서 조망되는 부소담악 풍경. 호수 위로 반영(反影)된 풍경이 부소담악의 또 다른 멋을 느끼게 한다.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환산로 518 (추소리) 고리산(환산)에서 본 부소담악 옥천3경 부소담악 그 절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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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옥주사마소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18. 04:10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사마소는 조선 중기 이후 지방의 고을마다 생원(生員)과 진사(進士)들이 모여 친목과 학문, 정치, 지방 행정의 자문 등을 논하던 곳이다. 그러나 점차 압력 단체로 발전하여 폐단이 컸으므로 선조 36년(1603)에 없앴으나 지방에 따라 그 폐단이 지속되기도 하였다. 옥주사마소는 효종 5년(1654)에 의창(義倉)을 뜯어다가 지었다. 당(堂) 안에는 관성사마안(管城司馬案), 향약계안(鄕約契案), 옥천군향약계규약(沃川郡鄕約契規約) 등 지방 문인들의 활동상을 알려주는 고문서들이 여러 편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앞면 4칸에 툇마루를 두고, 그 뒤에는 오른쪽으로 마루,왼쪽으로는 온돌방, 부엌을 두었다. 사마소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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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鄕愁) - 정지용(鄭芝溶)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21. 10. 17. 19:14
향수(鄕愁) - 정지용(鄭芝溶, 1903~1950)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