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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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공원 비석군(昭憲公園 碑石群)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6. 23. 20:30
소헌공원 비석군(昭憲公園 碑石群) 2011년에 소헌공원(昭憲公園)이 조성되면서 청송향교 담장 주변에 있던 비석 10기를 한 곳으로 옮겨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 지방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비석이다. 치적 내용은 교량신축, 관아중수, 재정지원, 조세공평, 청렴, 애민선정 등이다.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소헌공원 내 척화비(斥和碑) 흥선대원군은 프랑스의 힘을 빌려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다 실패한 후 천주교를 탄압하고 1866년 프랑스 선교사 9명을 비롯한 수천 명의 교도를 처형했다. 이를 구실로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병인양요가 시작되었다. 대원군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맞서 싸울 것과 문호개방을 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척화비(斥和碑)에는 주문(主文)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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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향교(長鬐鄕校)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6. 18. 19:03
장기척화비(長鬐斥和碑)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4호 척화비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더욱 강력히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의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이 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비는 반듯한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이며, 비몸의 네 모서리와 윗변의 양끝을 단정히 다듬어 놓았다. 앞면에는 비문을 새겨 두었는데 내용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양이침범 비전칙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들 자손만대에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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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斥和碑) - 조선 1871년(고종 8년)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2. 27. 19:36
척화비(斥和碑) - 조선 1871년(고종 8년)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는 비석 19세기 후반, 조선은 농민들의 봉기와 제국주의 열강의 문호 개방 요구에 직면했다.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을 대신하여 실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후,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외세의 침입에 대항할 것을 선언했다. 이 척화비는 서울 종로에 세웠던 것으로 임오군란(壬午軍亂) 이후 철거되어 묻혔다가 1915년 보신각 이전 시 발굴되었다.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우리들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戒我萬年子孫 丙寅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