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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는 "백마고지 전적비"
    국내 나들이/안보 현장(安保 現場) 2008. 11. 8. 07:37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는 "백마고지 전적비"

     

     

    백마고지 전적비는 6.25 한국전쟁 당시 쌍방에서 30만발의 포탄을 주고받으며 10일동안 24차례나 주인이  바뀌며

     

    사투를 벌였던 한국전쟁 최대의 격전지로 백마고지 남쪽에 전적비를 만들어 1990년 5월 3일 준공식을 가진바 있다.

     

    이 전적지의 설계는 홍익대학교의 강건희 교수가 맡았으며 당시 처철했던 격전의 현장을 재현하는 야외 기념비로

     

    높이 22.5m  가로 2.0m  세로 5.1m의 두손을 모아 통일을 기원하는 모습이다.

     

    백마고지 전적비의 조형물을 제작한 강건희(姜健熙) 교수는 1939. 7.21일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건축미술과를 졸업한 후, 곧 이어 모교인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그간의 공적은 ‘88서울올림픽 펜싱경기장 스포츠레저부문 은상(銀賞),제16회 예총 예술문화상 대상(大賞)수상과,

     

    특히 백마고지 기념관은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 및 대한건축학회 작품상 수상 등, 

     

    수 많은 현상공모 및 창작공모 부문에서 수상을 한 바 있다.

     

     

     

     

     

    해발 359m에 불과한 능선 이지만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중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고지 쟁탈전이었다.

     

    백마고지 전투는 쌍방의 포탄 낙하가 30만발이나 작렬했고, 쌍방간의 포격으로

     

    산이 본래 모습을 잃고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형상과 같다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국군 9사단은 백마고지의 대승을 계기로 백마사단이라 명명되었다.

     

    당시 이 백마고지 사수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산화된 육군 제9사단 장병등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에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백마고지 전적기념관 사이로 보이는 전적비

     

      

    두손을 모아 통일을 기원하는 모습의 백마고지 전적비(야외 기념탑)

     

     

     

     

     

     

     

         

    백마고지전투란 6·25전쟁 중 1952년 10월 6일 저녁부터 10월 15일 오전까지

     

    강원도 철원 서북방 395고지(백마고지)에서 전개된 전투를 말한다.

     

    백마고지는 철원 북쪽의 효성산 언저리에 있는 무명고지였으나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보급로를 장악할 수 있는 군사지정학상 요지로 중국인민지원군과 국군간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었으며 전투가 끝난 후에는 집중적인 포격으로 고지의 모습이 달라졌다.

     

                   이로 인하여 395고지는 백마고지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이러한 말뜻은 격전을 치루고 난 처철한 산의 형상이

     

    마치 백마가 누운 모습이라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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