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국군과 중공군의 진혼을 달래는 "백마고지 위령비"
    국내 나들이/안보 현장(安保 現場) 2008. 11. 15. 05:02

    국군과 중공군의 진혼을 달래는 "백마고지 위령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215번지내 백마고지 전투전적비내에 조성된 백마고지 위령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 중공군 등 17,535명(아군 3,146명  중공군 14,389명)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인데

    당초 1985년 6월 6일 육군 제5사단 장병과 대마리 지역주민들이 백마고지 후방에 세운 3.6m 높이의 현무암 비석은

    오랜 풍상으로 훼손되고 대규모의 위령제를 봉행하는데는 장소 협소 등의 어려움이 있어

    1990년 5월에 철원군에서 위령비 일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군과 중공군의 진혼을 달래는 백마고지위령비


     


    백마고지 위령비 후문에 새겨진 추모 시(詩)

     

    백마의 얼 - 모윤숙 -

                  풀숲에 누워 그날을 본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갈라지듯,적들이 몰려오는 저 산과 강에서

    우리는 끓는 피로 용솟음 치며,넘어지려는 조국을 감쌋다.

                  이 한몸 초개같이 바치려 숨찬 목소리로 다 같이 강물을 헤치고 산을 부스며 달려 오는 적들을 막았다.

                 수많은 적을 따라 소탕하고 조국이 얼굴 내달려 떡갈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원수의 고함을 눌러버렸나니

    쓰러지며 죽으면서도 다시일어나 숨결을 돌리고 숨지려는 조국을 살렸노라

    나의 조국 영원한 땅이여 만세를 가도록 그 얼은 살았으니

    지금도 그때처럼 귀를 기울이고 저 몰려오는 적을 막고 있노라.

    푸르러 푸르러 영원한 젊음 우리는 그 품에 안겨 안심하리라.

    어머니 조국에 이 혼을 맡기며 후회없이 더 강하게 앞으로 달려가리다 


     


    짙푸른 청명한 하늘과 대비되는 백마고지


    위령비 비문에는 조국의 자유와 평화통일을 위하여 이 격전지에서 장렬히 산화하신 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충정은 영예롭고 백마혼은 무궁하리라. 장하다 임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이 고지에서 희생된 국군 504위(중공군 8,234위)의 영혼을 진혼키 위해

    5사단 전장병과 대마리 주민,백마고지 참전전우회원의 뜻을 모아 세운다.  

     

     


    백마고지 위령비앞에 백마고지 전투 전사 유공자비에 전사자의 계급과 성명이 비문에 새겨져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새삼 느껴진다.

     


    철원군 북쪽에 있는 백마고지는 6.25동란 당시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대공세로 10일 동안에 걸쳐 대 혈전이 계속되었던 백마고지 전투는

    피아의 포탄낙하가 30만발이 작렬했고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어 2개 사단이 완전 와해되고 말았으며

    국군 제9사단은 백마고지의 대승을 계기로 백마사단이라 명명되었다.


     


    백마고지는 395고지라고도 하는데  철원읍 북서쪽 약 12km 지점인 휴전선 북쪽에 있다.

     심한 포격으로 온통 파괴되어 공중에서 보니 백마(白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2년 10월 6~15일 정예군으로 알려진 중공군 제38군이 국군 제9사단(사단장 金鐘五 소장)이 지키고 있는

    395고지에 공격을 개시하여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뀔 정도로 혈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이 전투에 1개 군단의 병력을 투입하여 1개 사단 병력을 잃었으며,

    아군(9사단)도 3,4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끝까지 고지를 사수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의 대승으로 휴전을 앞둔 군사적 요지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유엔(UN)군은 휴전 회담에서 계속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