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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제지간 배인 거북선과 판옥선(板屋船)
    국내 나들이/섬(島)으로 2009. 2. 28. 19:31

    형제지간 배인 거북선과 판옥선(板屋船)

     

    전라남도 여수시 오동도에 가면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표석을 가운데에 두고 임진왜란때

    남해안에서 일본왜선과 치열한  해전을 벌였던 형제지간이라 할 수 있는 거북선과 판옥선이 전시돼 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표석과 거북선


    충무공 이순신이 썼던 정확한 표현은 ‘무호남 무국가’가 아니라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이다.

    직역할 경우 ‘만약 호남이 없었으면 곧바로 나라는 없어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표석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거북선 우측에는 판옥선이 전시돼 있다.


     

    임진왜란 승리의 주력함인 거북선의 위용


     

    호남은 곡창이고 전략적 요충지세이기 때문에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호남을 앞서 지키기 위하여 한산도에다 진을 폈습니다 라는 내용인데...

    이 충무공이 계사년(1593년) 4월에 지평 현덕승(持平 玄德升)에게 보낸 서한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현덕승(玄德升ㆍ명종 19년~ 인조 5년, 1564~1627)은 이순신보다 19살 아래로 천안 출신이며

    임진왜란이 나기 2년 전인 1590년 문과에 급제했다. 따라서 불과 3년 후에 이순신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면

    공적인 관계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인물로 봐야 한다.

    당시 이순신 장군의 편지도 아산에 있던 현덕승에게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사헌부 지평’이라는 정5품 관직은 현덕승이 훗날 가장 높이 올라가서 그렇다는 것이고

    당시에는 피란가는 광해군을 수행한 동궁기사관(東宮記事官)이라는 낮은 직위에 머물다가 아산에 돌아와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고향이 바로 아산이었다.

    ‘이충무공전서’의 번역자인 노산 이은상은 편지 내용 중에 ‘척하(戚下)’라는

    표현이 담겨 있는 것을 들어 외가 쪽 친척으로 추정했다.


     


    거북선


    거북선은 1591년에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충무공(이순신 장군의 시호)께서

    일본의 침입이 있을 것을 예견하여 건조한 당대무비의 전선(戰船)이다.

    거북선의 크기는 그 당시의 전선과 거의 같으나 효율적인 전투력을 고려하여 건조된 점이 특수하다.

    선체는 2치에서 1자에 이르는 두꺼운 목재를 사용하여 매우 튼튼하게 하고,

    개판 위에는 판자와 철갑을 덮고 쇠못을 꼽아 적이 발 붙일 곳이 없게 하였으며,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설계하였다.

    또한 16개의 노와 2개의 돛을 겸용하여 항해하였고, 돛대는 세웠다 뉘었다 할 수 있었으며,

    선수에는 용머리 모양을 만들어 포 구멍을 두었고, 선미에는 거북의 꼬리 모양을 붙여 그 아래에 포 구멍을 내었으며,

    선체 좌우에는  각각 6개의 포 구멍을 두었는데,

    그 전체의 모양이 대략 거북과 같았으므로 그 명칭을 거북선이라 하였다.

    전투시에는 거적으로 쇠못을 덮고 돌진하였는데 적병이 뛰어 들다가는 쇠못 끝에 찔려서 죽었으며,

    또 에워싸고 엄습하려 전,후,좌,우에서 일시에 총포를 쏘아 범접을 못하게 하면서 종횡 무진으로 적선을 격파하였다.

    거북선은 임진왜란(1592~1598)때 이충무공의 지휘아래 1592년 5월 29일 사천해전을 비롯하여

    당포,한산,부산 등 여러 해전에서 선봉 돌격선으로 출전하여

    수 많은 왜선을 여지없이 격파하고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판옥선


    판옥선은 상부갑판에 장대(지휘하는 탑)를 설치한 구조의 전함으로,

    평시에 대부분 왕의 공물을 운반하는 화물선으로 겸용하던 맹선으로는 을묘왜변 당시 더 크고 개량된 무기로

    침략해 오던 왜적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닭고 1555년 9월경 발명하게 되었다.

     조선후기에 전선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수군의 주력함으로써

    막강한 화력과 튼튼함으로 임진왜란(1592년~1598년 일본의 침략)당시 주된 전함으로

    거북선과 함께 일본해군의 격퇴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판옥선은 2층 구조로 된 유일하고 우수한 전함으로 상갑판에 설치된 장대에서는 지휘를 하고,

    노군은 선내에 자리잡고 적에게 노출 됨이 없이 노역에만 전념을 하고,

    전사(戰士)들은 상갑판위에서 적을 내려다 보며 전투에 임하여 성공적인 전투를 임할 수 있었다.

    1592년 5월 8일 옥포해전을 포함하여 해전을 치르는 동안 이충무공의 지휘아래

    일본침략에 대항하여 4번의 승리에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판옥선은 현재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해전에서 전략,전술이 뛰어난 우수한 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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