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경릉(敬陵)"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0. 9. 30. 23:38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경릉(敬陵)"
경릉(敬陵)은 후에 덕종(德宗)으로 추존된 의경세자(懿敬世子, 1438~1457)와
그의 비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 1437~1504)의 능이다.
소혜왕후는 제9대 성종의 어머니로 흔히 인수대비라 부른다.
경릉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30-1번지 서오릉 지구에 있는데, 서남향의 동원이강형 능이다.
시호는 아버지 세조가 직접 내려 ‘온화하고 성스럽고 착한 것이 의(懿)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경계하는 것을 경(敬)이라 한다’ 했다.
의경세자는 세조의 맏아들로 이름은 장(暲), 자는 원명(原明)이다.1455년 세조가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면서 왕세자로 책봉됐다.
단종과는 사촌지간으로 나이는 세 살이 더 많았다.
의경세자는 한확의 딸 한씨와 결혼해 월산대군을 낳고, 세자 책봉 후인
1457년 자을산군(성종)을 낳았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스무 살에 요절했다.
세자가 병이 나자 왕실은 환구단(원구단), 종묘, 사직 등에서 기도를 드리며온갖 정성을 기울였으나 9월 2일 본궁(경복궁) 정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된 단종은 다시 노산군으로 강봉돼
영월로 유배되고, 단종 추종세력이 복위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서예를 잘했던 의경세자는 승하 직전 ‘비바람 무정하여 모란꽃이 떨어지고,
섬돌에 펄럭이는 붉은 작약이 주란(朱欄·붉은 칠을 한 난간)에 가득 찼네.
명황(明皇)이 촉(蜀·중국 삼국시대에 유비가 세운 나라) 땅에 가서 양귀비를 잃고 나니,
빈장(嬪·임금의 수청을 들던 궁녀)이야 있었건만 반겨보지 않았네’라는 시를 썼다.
세자를 간호하던 사람들이 이 시를 보고 상서롭지 못하다며 걱정했다.
아버지의 왕위찬탈 과정을 지켜본 세자의 중압감을 표현한 글이라고 했다.
211
'국내 나들이 > 능, 원, 묘(陵 園 墓)'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 공양왕(高麗 恭讓王)과 삽살개의 전설이 담긴 연못 (0) 2010.10.02 비운의 여인 장희빈(張禧嬪)의 묘(墓) "대빈묘(大嬪墓)" (0) 2010.10.02 세종대왕 영릉비(英陵碑) (0) 2010.09.19 가장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 "영릉(英陵)" (0) 2010.09.18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잠든 곳 "영릉(英陵)" (0) 2010.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