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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초장지(正祖大王 初葬地)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1. 12. 3. 06:30
정조대왕 초장지(正祖大王 初葬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산1-1 융.건릉(사적 제206호) 내
정조대왕 초장지(임금이 승하 후 처음 묻힌 터)로 추정된 곳을 찾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1년 10월 24일부터 융.건릉 경내 동남쪽 경계 부분이면서 용주사 서쪽 편에 있는
이곳을 조사한 결과 철(凸)자 모양으로 판 묘광(무덤 구덩이) 북편에서 백자명기와 백자호, 칠기함,
청동 편종, 난간석 하부 지대석 등 고고학적 증거가 될 만한 유물을 수습했다.
이들 유물 중 뚜껑을 갖춘 단지인 유개호는 18세기 조선백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형태로 평가되며,
7개를 일괄로 부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백자명기는 출토품 종류가 다양하다.
나아가 작이라 일컫는 유물은 다른 일반 분묘에서는 확인된 바가 없어 주목된다.
또한, 궁중제례악에서만 사용하던 악기인 편경(編磬)과 편종(編鐘)이
각각 명기로 제작돼 출토됐다는 점은 이 무덤이 왕릉으로서의 격이 있음을 증명한다.
현재의 건릉은 1800년 정조가 승하한 후
1821년 그의 왕비 효의왕후와 합장하고자 당초 매장지에서 옮겨 조성한 무덤이다.
그렇지만 애초의 매장 위치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오늘날 수원은 정조대왕이 세운 계획도시에서 출발했다.
정조대왕은 개혁의 꿈을 안고 그 꿈을 실현하고자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축성했다.
그러나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1800년 6월 28일 49세의 나이로 승하하자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능인 융릉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안장됐었다.
효의왕후가 승하하자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해서 오늘날의 건릉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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