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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자태, "공세리 성지, 성당(貢稅里 聖地, 聖堂)"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3. 3. 21. 05:27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자태,

     

    공세리 성지, 성당(貢稅里 聖地, 聖堂)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4번지 공세리 성지,성당

    1890년에 시작된 120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공세리 성지. 성당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4호로 350년이 넘는 다수의 국가 보호수가 있으며,

    높은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근대 고딕식 조적조 종교건물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수려한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명성답게 공세리 성당만의

    독특한 매력과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다.

    공세리 성당의 아름다움은 이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도 더 잘 알려져 있다.

    성당이 위치한 1만 여평의 부지는 성종 9년(1478년)부터 영조 38년(1762년)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되었던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지인 역사 유적지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한 이곳은 내포지방의 입구로써 내포지역은

    한국천주교회의 신안의 못자리라 불릴 만큼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중심지였다.

    공세리 성당에는 1801년~1873년 신유, 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하신 32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순교 성지이기에 더욱 경건하고 의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은 1890년 프랑스 외방선교회 파스키에 신부님에 의해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어 그 후 5년 뒤인 에밀 드비즈(파리 외방선교회) 신부님에 의해

    지금 이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드비즈 신부님은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시는데, 특이할 만한 업적 중 하나는

    우리에게 이명래 고약으로 알려진 바로 그 고약의 원 개발자였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주는데,

    그 비법을 당시 드비즈 신부님을 도와주었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되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기에 공세리 성당은 “이명래 고약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예수마음 피정의 집

    예수마음 피정의 집은 각종 심신 및 행사와 피정 프로그램을 위하여 설계되었다.

    기도의 공간으로는 산책을 겸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과 성체 조배실이 있고

    캠프파이어를 겸한 야외 행사를 도모할 수 있는 시설과 충분한 규모의 주차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예수마음 피정의 집은 수용인원 100명으로, 온돌 5인 1실의 방과 화장실, 온돌 큰방 2개의 숙박시설과

    공동샤워실, 대강의실 겸 식당, 휴게실, 탕비실(자료준비실) 등이 있고,

    본당 단체 피정, 주일학교 캠프, 청년 MT, 가족 피정,자전거 성지순례(자전거 50대 완비),

    단체 30명이상 피정과 식사가 가능한 시설이다.


    이곳 충청남도엔 가톨릭 성지가 많이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초대신부이신 김대건 신부가 이곳 당진 합덕 출신이기도 하지만

    4대 박해(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

    대원군의 집정시기인 병인박해 때 내포지역의 옥사(獄舍)가 있던 해미읍성에서 1,000여명이 집단 순교하면서 그 절정을 이룬다.

     

    성당주위엔 성당 신축되기 이전부터 심어져 있던 나무가 있는데, 대부분 300년을 넘는 보호수들이다

    성당을 신축할 때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한다.

     

    역사의 유적지로 유명(세곶 창고지)

    성당이 위치한 1만 여평의 부지는 예로부터 충청도 알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貢稅) 창고가 있던 공세곶 창고지로써,

    조선조 성종 9년(1478년)에 이곳에 세곡 해운창을 설치 운영해 오다가

    중종 18년(1523년) 80칸의 창고를 짓고 영조 8년(1762년)에 폐창이 될 때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되었던 공세 창고였다.

     

    드라마- 모래시계, 불새, 에덴의 동쪽 등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고스트 맘마, 신부수업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성당 내부 "수고하는 자와 무거운 짐진 자는 내게로 오라, 나! 너희를 도우리라"

     

    공세리 성당 제대

     

    공세리성당이 자리한 충남 아산 인주면은 역사가 깊은 곳이다.
    백제를 세운 주몽의 아들 비류가 고구려에서 남하해 처음 정착한 미추홀이 이곳이며.
    지금은 밀두리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공세리성당이 처음 지어진 것은 1895년. 당시에는 마을의 가정집을 개조해 미사를 드렸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현재의 성당은 1922년 프랑스 출신의 드비즈 신부가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지은 것이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이곳 아산만과 삽교천은 천주교회 박해 시대에는

    내포지방의 입구로 해상과 육로로 연결되는 중요한 포구였다.

     

    현재 성당이 위치한 9,500여 평의 부지는 예로부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가 있던 공세곶 창고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공세리성당은 1890년에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성당으로써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제144호이면서,

    2005년도에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된 성당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지, 성당 박물관‘

    공세리 성지, 성당 박물관은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4호인 구 사제관을 개.보수하여 봉헌된 것으로

    대전교구 최초의 감실을 비롯한 1,500여점의 유물을 모시고 있다.

    박물관의 구성은 한국 천주교회의 태동에서부터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의 교우촌 생활 모습과

    신유~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들, 그리고 한국전쟁당시 순교한 성직자들의 활동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공세리성당 초대 신부인 에밀 드비즈 신부의 유물과 성 앵베르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땅 신부의 유해와 성녀 루이스 드 마릴락의 유해 뿐만 아니라 32위 순교자 유해를 모시고 있다.

    박물관은 대전교구에서 첫 번째로 행해진 성체거동 행렬답게 성체 신심 안에서

    신앙인들에게는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온 순교자들의 삶과 얼을 본받고,

    신앙 선조들의 참된 믿음을 이어 받아 많은 이들에게 교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터전이 되고 있다.

     

     

     순교성지

    한국 천주교회는 4대박해는 신유박해(辛酉迫害), 기해박해(己亥迫害), 병오박해(丙午迫害), 병인박해(丙寅迫害)를 통해

    1만여명의 순교자를 낳게 되는데, 그 대부분이 내포지방에서 나왔다. 신유박해 때는 아산 최초의 순교자인 하 발바라가 있다.

    또한 병인박해 때 박씨 삼형제인 박의서(사바), 박원서(마르코), 박익서(세례명 미상)를 비롯하여 부부가 영광스럽게 순교한다.

    들을 포함한 병인박해 때 아산지역 출신 순교자는 모두 32명이였으며,

    각각은 서울, 수원, 공주 등으로 끌려가 고문, 옥사, 참수형 등으로 순교하였다.

    봉헌된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에는 박의서(사바), 박원서(마르코), 박익서 3분의 유해와

    박인서, 이 마리아, 이씨부인, 박홍감, 박화진(알렉산데르)와 조 모니카의 묘표석,

    그리고 순교자 김중백을 포함한 세분의 묘석이 모셔져 있다.

    (32위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를 모시고 있는 순교성지

    공세리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이곳 아산만과 삽교천은 교회 박해시대에는 내포지방의 입구로

    해상과 육로로 연결되는 중요한 포구였으며, 현재 32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성지이다.

     

     

    성당에 가면 꼭 성모마리아 상이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어머님으로 공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타 종교에서 가톨릭이 성모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 잘못 아는이도 있었는데 지금은 인식이 바로 된 것 같다.

     

     

    고약(膏藥)을 개발 보급한 곳

    1895년에 이곳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성일론:成一論)신부님이 프랑스에서 배우고 익힌 방법으로

    원료를 구입해 고약을 만들어 종기로 고생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게 된다.

    그 비법을 드비즈 신부님이 당시 신부님을 도와 일해 주었던 이명래(李明來,요한)에게 전수하여

    "이명래 고약"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보급하게 된 것이다.

     

    350년이 넘는 국가 보호수도 3그루나 있고, 그에 버금가는 오래된 거목들이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으며,

    보는 지점마다 또 각 계절마다 다른 독특한 공세리 성당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공세리 성지, 성당의 순례미사 시간은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 까지는 오전 11시, 주일에는 오전 11시 30분에 미사가 봉행된다.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성당

    공세리 성당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장소이다.

    현재까지 70여 편이 넘는 유명한 영화 드라마가 촬영되었다.

     

     공세리 성당 본당미사 시간은 월(오전 6시), 화(오전 9시30분),화, 목, 금(동절기는 오전 7시, 하절기는 7시 30분),

    토(오후 3시, 어린이), 토요특전(동절기는 저녁 7시, 하절기는 저녁 7시 30분), 주일(오전 6시, 10시, 저녁 7시)

     

     

    공세리성당의 초대 신부님이었던 드비즈는 ‘이명래 고약’의 개발자로도 유명하다.
    당시 이곳에는 80여년에 걸친 간척사업이 진행됐는데, 드비즈 신부님는 고된 노동으로 몸이 헐어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한방의술을 활용, 자신이 직접 한약을 조제한다.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님의 한국 이름을 따서 "성일론 고약"으로 불렀다.
    그 후 자신의 심부름꾼이었던 이명래(요한)에게 고약의 비법을 전수해 준 뒤 "
    이명래 고약"이 되었다.

     

    순교자 32위의 뿌리를 찾아서~(신유-병인박해)

    (연번, 성명, 세례명, 나이, 거주지, 순교일, 순교지, 기타사항 순으로)


    1.하 하발라 아산 반대마을 1853.3 아산 해미에서 투옥, 석방 후 병사

    2 박홍갑 18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6 서울 박의서의 아들

    3 김중백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6.10 수원

    4 지 글라라 58세 아산 구만이(현 구말라) 1867 공주 병인박해 때 공주로 피신

    5 박의서(사바) 62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7.8.8 수원 걸매회장

    6 박원서(마르코) 51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7.8.8 수원 박의서의 첫째동생

    7 박익서 45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7.8.8 수원 박의서의 둘째동생

    8 박인서 38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7.8.8 수원 박의서의 사촌, 옥중 영세

    9 이씨(여) 38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8.8.8 수원 박의서의 종제수, 옥사

    10 이 마리아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7.8.8 수원 박원서(마르코)의 처

    11 박제환(베드로) 18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7 서울 처가에 갔다가 잡힘

    12 김 필립보 57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8.7 남양

    13 박 마리아 57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8.7 남양 김 필립보의 처

    14 김흥서(토마tm) 38세 수원 갈매(현 아산 걸매) 1868.8.3 남양

    15 조 모니카 50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8 수원 옥사 박의서의 종수

    16 박 알렉산델 31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8 서울 조 니카의 장자

    17 이학습 42세 수원 갈매(현 아산 걸매) 1867.9 수원

    18 김지득 47세 새원여(현 밀두리) 1867년 가을 수원

    19 김장복 수원 밀머리(현 밀두리) 1866.12 서울

    20 김씨 수원 밀두리(현 밀두리) 1866.12 수원 김장복의 처

    21 장원심 50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8 수원 신문 교우

    22 장팔보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8 수원 아산 용봉골 피난후

    23 오인악 18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8.6 수원 모친은 방면됨

    24 최 사도요한 45세 수원 걸매(현 아산 걸매) 1869.8.25 수원

    25 유만여(요셉) 28세 아산 산소밀(현 아산 산정리) 1879 서울 옥사

    26 함 요한 45세 아산 뒷내 공주

    27 함 베드로 20세 아산 뒷내 1867.4.9 공주 함 요한의 아들

    28 이 요한 아산 쇠재현(현 아산 성내리) 1871.3.19 서울 이 베드로의 부친

    29 이 베드로 아산 쇠재현(현 아산 성내리) 1871.3.19 서울 이 요한의 아들

    30 이 프란치스코 아산 쇠재현(현 아산 성내리) 1871.3.19 서울 이 베드로의 아들

    31 장요한 50세 아산 등골 서울

    32 김 바오로 52세 수원 밀머리(밀두리)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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