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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천 탁사정(堤川 濯斯亭)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3. 10. 6. 06:57

    제천 탁사정(堤川 濯斯亭)

     

    강원도 원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국도 5호선변에 자리하고 있는 탁사정(濯斯亭)

    조선 선조 19(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에 돌아올때 해송 여덟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八松)이라 명명하였고, 그뒤 그의 아들 희운이 정자를 짓고 팔송정(八松亭)이라 하였다.

    허물어진 팔송정을 후손 윤근이 다시 세웠고 원규상이 탁사정(濯斯亭)이라 하였으며,

    팔송은 모두 죽고 지금은 한 그루도 남아있지 않으나 1999년도 10월에 팔송마을 및 제방둑에

    20그루의 해송을 마을에서 심어 앞으로 해송을 구경할 수 있다.

    제천 10경의 "탁사정"은 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자 주위의 절경을 말하는 것이다.

    구한말 정운호(유인석 의병장과 함께 적의토벌 지휘에 맹활약)가

    제천의 절경 8곳을 노래한 곳 중 제8"대암(袋岩)"이 이곳이다.

    탁사정(濯斯亭)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산 224번지 제천천변(堤川川邊)에 위치하고 있다.

     

     

     

     

     

    滄儂(창농)

     

    탁사정을 지은 堤川 西쪽 弓谷(궁곡)마을에 살았던 任允根(임윤근)의 호(號).

     

     

     

     

    濯斯亭 記(탁사정 기) (原本)

     

    亭子(정자)를 씻을濯(탁)자로 이름함은 뜻의 由來(유래)가 있다.

    濯(탁)의 근원이 모두 中國(중국) 楚(초)나라 屈原(굴원)의 漁父辭(어부사)를 노래한 滄浪之水(창랑지수)라는데서 나왔다.

    魯鄒(노추) 孔子(공자)와 孟子(맹자)님에 훈계를 나도들어 알고 있다.

    楚(초)나라에 屈原(굴원)이 漁父辭(어부사)를 지어 당대를 울렸고 唐(당)나라 두잠이는 百花潭水(백화담수)의 글귀를 지었고

    宋(송)나라 歐暘公(구양공)이 “邀我共作(요아공작)”이란 책을지었다.

    歲月(세월)이 흘러 때는 옛이요 世代(세대)는 지금 이어서 그 자취에 흠뻑 젖어들지 못하고 말도 능히 새기지 못한지라

    그 남긴 志趣(지취)와 前代(전대)의 風流(풍류)가 저와 같이 높으며 후배들이 바라봄이 이와 같이 얕은가.

    堤川(제천) 西(서)쪽 弓谷(궁곡)마을에 滄儂(창농) 任允根(임윤근)이란 친구가 살고 있으니

    사람됨이 얽매이지 않고 뛰어나서 자못 二樂(이악)의 풍취가 있었다.

    그 先代(선대) 十代祖(10대조) 諱(휘) 應龍(응룡)이 耽羅佰(탐라백)이 되었더니 벼슬을 마치고 오는날에

    소나무 여덟그루를 마을뒤에 심으니 사람들이 耽羅佰(탐라백)을 비유하여 棠菜公柏(당채공백)이라 부르고

    그로 인하여 八松(팔송)마을 이라 부르니어언 三百年(300년)이라 !

    그 圭蓽(규필)이란 늙은이가 이따금 전에 盛時(성시)에 일을 설명하니 弓谷(궁곡) 東(동)쪽 帒岩(대암)이란 바위가 있으니

    바위 形狀(형상)이 위로 磐石(반석)이요 아래도 磐石(반석)이며중간엔 물이 돌아 南(남)쪽으로 굴을 이루니

    사람들이 전대를 岩口(암구)에 달고고기가 들어가기를 기다리니 이로 인하여 帒岩(대암)이라 稱(칭)한다고 한다.

    그 아래로 물이 淸濁(청탁)으로 나뉘어 마치 하늘이 滄浪之水(창랑지수)한 구역을 베어다 놓은 것 같으니

    任允根(임윤근)이 사는 곳과 관역의 두어번 거리이라 일하고 여가에 골마다 찾아다녀 보니

    험하고 푸르고 怪狀(괴상)함이 한 폭의 비단이라 하늘이 빼어낸 곳이오 황패하여 버려진 터가 아니더라.

    이로 말미암아 항상 그 위를 방황하여 좋운계기가 되어 뜻을 정하고靳木(근목)으로 돌을 뚫어 두어간 亭子(정자)를 세울 기초를 얻었다.

    이에 木工(목공)으로 亭子(정자)를 짓기를 말하니 南北(남북)의 모든 산봉우리가賓主(빈주)의 서로 揖(읍) 하는 형상이니

    九鶴(구학)과 鳳凰(봉황)이라늘 큰 감음이 들면 太守(태수)가 용복에서 祈雨祭(기우제)를 올렸다.

    돌이 뾰족 뾰족하여 하늘을 떠받들 기세가 三峰(삼봉)이라 바위길 소나무그늘에 날아갈 듯한 姿態(자태)의 亭子(정자)가 있으니

    바로 濯斯亭(탁사정)이라 千金(천금)의 費用(비용)을 아끼지 않고 하루에 이룬자는 亭子(정자)를 지은 任允根(임윤근)이다.

    옛적에 임도란이란 사람의 시 에“갈매기 일어남에 모래이슬 떨어지고 낚시배 뜨니 사람이 누어있네”라는 싯구가 있으니

    이 아름다운 景致(경치)를 이에 홀로 님이 지나간 風流(풍류)라 하리오.

    슬프다 사물의 興敗(흥패)와 사람의 盛衰(성쇠)를 누가 豫測(예측) 하리오.

    옛적에 洪 處士(홍 처사) 玉壺(옥호)가 이곳에 亭子(정자)를 세우니 이름하여 玉壺亭(옥호정) 이라 하였다.

    당시에 좋은 일이요 風流(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에게 名聲(명성)있는 장소였다.

    사람도 이미 옛이요 땅도 이미 荒廢(황폐)하여 여운이 다한지라 고을에 버려진 터에 함께 산보하며

    자취를 보니 비길대가 없더니今日(금일)에 어찌 그 이 땅이 復興(부흥)할 줄 알았으리오.

    옛적에 耽羅佰(탐라백)이 八松(팔송)을 심으매 手澤(수택)을 얻어 마을 모양이 의구하더니

    그 後(후)로 늦게 옛 자취로 인하여 또 어찌滄儂(창농) 任允根이 十代後(10대후)에 태어나

    다시 이러한 일로 十代(10대) 先祖(선조)를 빛낼 줄을 알았으리오.

    멀리 점치면 운이 오래되어 돌아옴이 분명하다.

    經淸(경수)는 맑고 渭濁(위탁)위수는 흐린 것은 愚夫愚婦(우부우부)도구별할 줄 알거늘

    아버지는 밭 일구고 자식은 씨앗뿌리면서 꽃하나 돌하나도 즐거이 타인에게 허여하니

    잠시도 濯斯亭(탁사정)이요 급하여도 濯斯亭(탁사정)이라 조심하고 부지런함이 濯斯亭(탁사정)가운데서 나오지 않음이 없으니

    비로서 천지만물이 각기 주인이 있음이라. 그렇다면 맑은 물에 갓끈을 씻고흐린물에 발을 씻는다하니

    어찌 그리 공평하지 못한가가까이 보면 炎凉(염양)을 茹吐(여토)에 비교함이니

    人性(인성)의 淸濁(청탁)이 水性(수성)의 淸濁(청탁)과 같아서 물과 사람이 피아의 사이가 없어서 淸濁(청탁)을 어찌 가릴 수 있겠는가.

    人性(인성)은 天機(천기)의 부림을 받는바요 水性은 天機(천기)를 보존하는 바니 그 부리키는바

    성품으로 보존하는 성품을 해친다면 이것이 人慾(인욕)을 먼저하고 天理(천리)를 뒤로함이 없겠는가

    갓끈과 발은 나에게 있고 淸濁(청탁)은 저에게 있으니 그 나에게 있는거로 보면 일동 일정을 이 가히 버릴수 없고

    저기에 있는거로 보면 一朝一夕(일석일조)에 변화가 無窮(무궁)함이라.

    이 그 버리지 못하고 無窮(무궁)함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사람과 물은 장차 한가지로 混沌(혼돈)한 틈으로 들어갈 것이다.

    千萬年(천만년)이 지나와도 三才(삼재)와 五常(오상)이 어찌 기리 어두운 이치가 있으리오

    또 古語(고어)에 이르기를 “한물결이 일어나면 만물결이 따르고 바람과 조수 요란하고 混濁(혼탁)함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 맑기를 기다리고자 함이 黃河(황하)가 맑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음이니 세상이 이미 흐려져서

    장차 모두가 즐겨 물에 빠질지경에이르러서 또 이미 큰물결이 거꾸러저 때로 심술이 있음을 보아도 어지럽지 않거늘

    하물며 어느 겨를에 濯斯亭(탁사정)의 탁을 얻어 씻겠는가그렇다면 뜨거운 것을 잡은자 어찌가서 씻기을 생각하고

    스스로 깨끗하려는자 또한 샘에서 씻음을 생각함이 있지 않겠는가

    物外(물외)에 뜨고 잠기며 사방에 티끌을 물가나 바다 가운데 푹 적시어

    是是 非非 營營 苟苟(시시 비비 영영 구구) 전부를 돌아가는 구름과 지나가는 바람으로 보낸즉

    어찌 어딜가나 滄浪之水(창랑지수)여서 또한 해롭고 해롭지 않은 것을 씻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들에 善(선)과 惡(악)을 滄浪(창랑)에 비유하여 스스로 얻는다면 사람이 물에 얻음이 있다는 말인가?

    물이 사람에게 스스로 얻는 形狀(형상)을 보여 준다는 말인가?

    이에 다만 마땅히 사람의 龜鑑(귀감)이 물에 龜鑑(귀감)인가

    그렇다면 두말의 이 疑惑(의혹)을 나는 스스로 얻는 뜻을 濯斯亭을 지은이에게 質問(질문)하여

    그 얻는바 解法(해법)을 얻고자 하노라.  

    乙丑(西記 1925)年  十一月 冬至日  完山人 靑隱(청은)  李炳善(이병선)  記 

      

    =  2005年 (乙酉)  7月 24日   堤川鄕校  申  恒  善  飜譯 =

     

     

    濯斯亭 重修記(탁사정 중수기)

     

    本 濯斯亭(탁사정)은  宣祖(선조)19年, 丙戌(병술, 1586年) 長興任氏(장흥임씨) 文忠公派(문충공파) 12世되시는

    諱(휘), 應龍(응룡)公 께서 全羅兵使(전라병사)와 濟州水使(제주수사)를 歷任(역임)하시고 堤川(제천)으로 歸鄕(귀향) 하실 때

    海松(해송) 여덟그루를 가지고 와 심고 亭子(정자)를 創建(창건)하여 八松亭(팔송정)이라 하였는데

    八松亭(팔송정)은 長久(장구)한 歲月(세월)의 흐름 속에서  消失(소실)되었고

    그 후 1925年 (乙丑, 을축)에 公(공)에 10代 後孫(후손)인 諱(휘),允根(윤근)이 山水(산수)가 秀麗(수려)한

    現 位置(현 위치)에 再建(재건)하여 中國(중국) 楚(초)나라 屈原(굴원)의 漁父辭(어부사) 滄浪之水(청랑지수)에

    根源(근원)을 한 淸斯濯瓔(청사탁영) 濁斯濯足(탁사탁족) 에서*(맑은 물에서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서는 발을 씻는다.)

    濯斯亭(탁사정)이라 이름 하였고 선비들과 風流客(풍류객)들이 學文(학문)과 風流(풍류)를 論(논)하던 名所(명소)로서

    그동안 後孫(후손)에 의해 管理(관리) 保存(보존)되어 오던중 1950年의 6,25 戰亂(전란)에 火災(화재)로 인하여

    破損(파손)된 것을 1957年(丁酉, 정유) 公(공)에 12代 後孫(후손)인 諱(휘),聖奎(성규)가 再次(재차) 復原(복원)을 한후

    50餘年(여년)의 歲月(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土木(토목)은 부서져 내리고

    丹靑(단청)은 비바람에 깎이어 그 退色(퇴색)함이 더 하더니

    2005年(乙酉, 을유) 十月 堤川市(제천시)에서 堤川十景(제천십경)  整備事業(정비사업)의 一環(일환)으로

    本 亭子(정자)의  重修(중수)를 施行(시행)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니 우리가 옛 일들을 記憶(기억)하듯이

    今日(금일)에 일을 記錄(기록)으로 남겨 後日(후일)의 자취로 삼고자 함이라.

     

    2005年(乙酉, 을유)  十月.

    長興任氏 堤川宗中(장흥임씨 제천종중)

    文忠公派  二十五25世孫(문충공파 25세손) 鍾學(종학) 三加 書(삼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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