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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단기념탑(誓報壇記念塔) 및 서보단사적기(誓報壇事績記)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4. 5. 27. 04:33
서보단기념탑(誓報壇記念塔) 및 서보단사적기(誓報壇事績記)
구한말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호남의 유림들이 분연히 일어나
`서보단(誓報壇)'을 쌓고 복수를 맹세한 당시의 현장인 국립공원 내장산 경내에
`사적비(事績碑)'와 `기념탑(紀念塔)'이 나란히 세워져있다.
조각가 김오성(金五聖)씨가 제작한 `서보단 기념탑'은 높이 4.3m, 둘레 4m의 대리석에
왕과 왕후를 상징하는 해와 달아래 복수를 맹세한 유림들의 모습을 담았고
뒷면에는 늘 푸르러 변함이 없는 소나무를 새겨 선비들의 높은 충절을 표현했다.
기념탑옆 사적비(事績碑)에는 또 높이 3m, 폭 90㎝ 오석에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떨던
호남의 유림들이 1903년 6월 명성황후에 대한 추모사업 추진을 발의한 뒤 각 고을에 통문을 발송,
그해 7월15일 26개 고을대표 53명이 내장사에 모여 울분을 토하는 등 일제에 항거를 서약한후 헌금을 배정,
단을 쌓고 매년 8월20일 추모제를 거행했다'고 쓰고 당시 유림대표들의 이름을 소개했다.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내장산국립공원
서보단사적기(誓報壇事績記)
서기1895년 을미(乙未) 8월 명성황후(明成皇后)가 폭악무도한 왜적(倭賊)들에 의하여 시해(弑害)되니
2천만 국민이 슬픔과 울분(鬱憤)은 하늘에 사무치고 일본에 대한 복수(復讐)의 소리가
삼천리 방방곡곡(坊坊曲曲)에서 터져 나왔다.
그후 곳곳에서 그 추모사업(追慕事業)이 이루어졌으니 1903년 계묘(癸卯) 3월에는
서울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 감모비(感慕碑)를 세우기로하고
유사(有司)를 정하여 각 도(道)에 헌금통문(獻金通文)을 보냈다.
이때 호남(湖南)에는 전주사(前主事) 한승이(韓承履)가 태인(泰仁) 무성서원(武城書院)으로 내려와
통문(通文)을 전하니 이를 각 군(郡)의 향교(鄕校)에 통지하여
1903년 7월15일 이곳 내장사(內藏寺)에서 대회를 가졌다.
대회에는 경유사(京有司) 한승이(韓承履) 내장사승 서담(內藏寺僧 西潭)과
26개 군(郡)에서 54명이 참가했는데, 헌금(獻金)을 배정한 후 유공하상(柳公夏相)의 발의(發意)로
서보단(誓報壇)을 쌓고 북쪽을 향하여 곡배(哭拜)하는 가운데 복수를 맹세하였으며
매년 8월 20일 추모제(追慕祭)를 거행(擧行)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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