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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건봉사 불이문(乾鳳寺 不二門)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4. 8. 15. 06:14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건봉사 불이문(乾鳳寺 不二門)

     

     

    1920년에 건립된 건봉사 경내 출입문으로, 사찰의 건물 중 한국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건물이다.

    불이문은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이다.

    1단의 낮은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다듬은 높이 1.61m의 4개 돌기둥 위에둥근 나무기둥을 세워 지은 건물로,

    다포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돌기둥에는 길이 90cm크기의 도안화된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천왕문(天王門)을 따로 건립하지 않고 불이문에 사찰 수호의 기능까지보탠것을 의미힌다.

    상단 중앙에 걸려 있는 불이문 현판은 조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이었던

    해강(海剛)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 매우 단정하면서도 힘이 있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에 위치한 건봉사 불이문(乾鳳寺 不二門)은

    1984년 6월 2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불이문 편액(不二門 扁額)

     

    해강(海岡)김규진(金圭鎭)(1868~1933)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 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 백운거사(白雲居士).

    8세 때부터 외삼촌인 서화가 이희수(李喜秀)에게 글씨를 배웠고 18세 때 중국에서 8년간 서화를 공부하고 돌아왔다.

    귀국 후 서울로 올라와 왕세자인 영친왕의 사부(師父)가 되어 글씨를 가르쳤고

    1902년경 일본에 가서 사진기술을 익혀 1903년 소공동 대한문 앞에 '천연당'(天然堂)이라는 사진관을 열었다.

    한편 '서화미술회', '서화협회'에 창립발기인으로 참가했으며 조선총독부 미술전람회의 서예부 심사위원을 맡기도 하는 등

    근대서화 계몽운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계속하다가 66세에 세상을 떠났다.

     

    서예의 각체에 두루 능하며 특히 활달한 대필서로 이름을 날렸다.

    금강산 구룡연의 20m에 달하는 미륵불(彌勒佛) 예서, 내금강의 천하기절(大下奇絶) 초서,

    법기보살(法起菩薩) 해서 등 각서(刻書)가 남아 있고 전국의 궁전, 사찰 현판에 많은 글씨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해인사의 '가야산해인사'(伽倻山海印寺), 부벽루의 '금수강산'(錦繡江山),

    서울의 '보신각'(普信閣), '희정당대조전'(熙政堂大造殿) 등이 유명하다.

    그림으로는 1920년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벽화 ‘총석정절경(叢石亭絶景)’과 ‘금강산만물초승경(金剛山萬物肖勝景)’이 있는데

    화려한 색채와 사실적 묘사로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문인화가답게 山水와 花鳥를 그렸으며, 특히 호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묵죽(墨竹)이 뛰어나며

    근대적 화풍이 엿보이는 ‘폭포’· ‘말’ 등의 작품도 있다.

     

     

     

     

     

     

    금강저(金剛杵)

     

    건봉사 불이문 돌기둥에는 길이 90cm의 금강저(金剛杵)가 음각되어 있는데,

    금강저는 탐욕과 죄악을 타파하는 지혜와 힘을 상징하는 도구이다.

    이는 천왕문을 따로 축조하지 않고 불이문으로 하여금 사찰수호의 기능을 함께 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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