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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악산 신흥사(雪嶽山 新興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4. 9. 1. 05:21

    설악산 신흥사(雪嶽山 新興寺)

     

    설악산 신흥사(雪嶽山 新興寺)는 신라(新羅) 진덕여왕(眞德女王) 6(서기652)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佛土國)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寺名)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서기1642) 또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년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한 것이다.

    6·25사변 때 고성군 건봉사는 전소되었고 영북지역의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었을 무렵

    고암, 성준 두 스님의 원력으로 여기 신흥사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속초노인복지관을 개관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춘천에는 불교방송지국을 개국하여 포교에 전념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新興寺)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 내원법당(雪嶽山 新興寺 統一大佛 內願法堂)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의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설악산 신흥사입구에 안치한 통일대불은

    우리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고자, 대덕스님들을 비롯한 2천만 불자들의 발원(發願)과 7천만 겨레의 정성을 모아

    여기 실향민들의 슬픔과 분단의 아픔이 배어있는 설악산입구에 지난 1987년 8월 30일(음력 7월 7일) 착공하여

    11년간의 대작불사 끝에 1997년 10 25일 봉안하여 점안대법회를 갖었다.

    통일대불전은 설악산 신흥사 일주문 앞 9천9백㎡ 부지에 대불높이 14.6m, 좌대높이 4.3m, 좌대직경 13m,

    광배높이 17.5m, 광배폭 14m의 규모로 청동좌불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불(巨佛)이다.

    또한, 좌대에는 지극정성으로 통일을 발원하는 16나한상을 조각했으며, 총 1백8톤 분량의 청동이 소요됐다.

    또한 통일대불 몸 안에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일체 중생을 보살피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전에 기도를 올리면

    민족통일이 앞당겨지는 것은 물론, 나와 내 이웃, 그리고 겨레의 앞날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충만해질 것이다.

    이 통일대불은 1990년과 1992년에 회향된 속리산 법주사의 청동미륵불(높이 33m),

    대구 동화사 석조약사여래불(높이 17m)과 더불어 3대 통일기원불상이다.



     

     

     

     

     

     

     

     

     

     

     

     

     

     

     

     

     

     

     

     

      신흥사 극락보전(新興寺 極樂寶殿) -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4호

     

    이 건물은 신흥사의 중심 전각으로 조선시대인 1647년(인조25)에 지었다.

    극락보전은 극락세계의 주인공인 아미타불을 주존(主尊)으로 봉안하는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을 지닌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시면서 영원토록 중생을 교화하는 분이다.

    그래서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광불 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아미타신앙이 성행(盛行)하였고, 많은 사찰에 극락보전 · 무량수전 또는 미타전이 들어서 아미타불을 봉행하였다.

    고통의 바다에 살고 있는 무릇 중생은 누구나 지극한 행복을 원한다.

    이 지극한 행복을 극락(極樂) 또는 안양(安養)이라 하는데,

    누구나 올바른 깨달음을 통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 바로 아미타불 이시다.
    신흥사 극락보전은 창건 후 1750년(영조26)과 1821년(순조21)에 각각 중수되어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의 크기는 190㎡로서 목조, 와가 이며 원형보존이 잘되어져 있다.
    안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우측에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함께 아미타삼존상을 봉안하여 극락세계의 광경을 나타냈다.

     

     

     

     

    신흥사 보제루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1770년(영조 46)에 세워진 것으로, 장대석으로 2단 쌓은 기단 위에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건물은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선방과 요사채로 둘러싸여 있는 마당을 둘러싸 사찰 중심의 영역의 공간성을 확보해 준다.

    건물의 하부는 기둥으로만 구성된 열려있는 공간으로 극락보전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 모습을 보여 주는 보제루 내에는

    법고와 목어, 대종, 경판이 보관되어 있고 몇몇의 현판과 중수기가 걸려 있다.

    이 중에는 이 사찰이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음을 보여 주는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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