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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골에서 부는 바람, 백탑파 이야기
    국내 나들이/박물관(博物館) 2015. 1. 29. 04:14

    탑골에서 부는 바람, 백탑파 이야기

     

    전시기간 : 2015. 1. 9(금) ~ 3. 29(일)

    전시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조선시대 도성 한복판에 우뚝 솟아 흰 자태를 뽐내던 백탑을 배경으로

    18세기 한양의 뛰어난 수재들이 모여 백탑파를 형성했다.

    그들은 차별의 벽을 넘어 폐쇄 되어 있던 조선을 좀 더 열린 소통의 사회로 만들고자 했다.

     “탑골에서 부는 바람” 전시는 18세기 한양에서 펼쳐지는 백탑파의 활동을 재조명하고,

    더불어 그들이 살았던 한양의 모습을 생생하게 다루었다.

     

     

     

    장맛비에 버섯이 돋고, 썩은 풀은 반딧불이로 변한다. 연암 박지원

     

     

    연암 박지원 초상

     

     

     

    규장각학사지서(奎章閣學士之署)

     

     

    受敎 見來客不起(손님이 찾아와도 그 자리를 떠나지 말라)

     

     

    受敎 非先生勿入(전임자가 아니면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

     

     

    규장각지(奎章閣志)

     

     

    면주전(綿紬廛)~ 솜과 명주를 파는 가게

     

    규수

     

    규수는 박지원의 손자로, 오랜 관지생활을 하며 조선의 개혁과 개방을 논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북학을 계승하는데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근대로 향하고 있는 조선의 앞날을 위해 훗날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그의 제자들과 함께 조부의 문집인 "연암집"을 통해 새로운 문명과 세계를 논했습니다.

    또한 자주적 개국으로 외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조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이규경

     

    이규경은 조부인 이덕무의 학문을 이어받아 다양한 분야에서 넓은 지식을 드러냈습니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오주(五洲)라는 말을 따 자신의 호로 삼았으며,

    풍부한 지식의 보고인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썻습니다.

    또한 동양의 전통사상과 서양의 실용적인 과학기술, 의학, 음양오행, 동식물, 풍속 등 다양한 방면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방대한 지식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살펴보며, 급변하고 있던 19세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

     

    정조는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창설하여 당파와 관계없이 실력있는 군사들을 선출하였습니다.

    이는 군권을 장악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정조는 1789년 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란 명을 내립니다.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는 문헌 고증을, 박제가는 고증과 목판 대본의 글씨 쓰는 일을,

    무관 백동수는 무예를 실기(實技)로 고증하는 일과 편찬 감독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백탑에서 맺어진 인연이 다시 모여 그들의 역량을 평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790년 음력 4월 29일, 4권 1책으로 된 "무예도보통지"와

    24개의 기예를 한글로 풀이하여 만든 1권 1책의 "무예도보통지 언해본"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되었다.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에게 명하여 장용영에 사무국을 설치하고 자세히 상고하여 편찬하게 하는 동시에,

    주해를 붙이고 모든 잘잘못에 대해서도 논단을 붙이게 했다.

    이어 장용영 초관 백동수에게 명하여 기예를 살펴 시험해 본 뒤에 간행하는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 "정조실록" 14년, 4월 29일 -

     

     

    정조어필(正祖御筆)

     

     

    홍재전서

     

     

     

     

     

    거문고의 대가 홍대용

     

     

    해금

     

     

    죽리탄금, 김홍도

     

     

     

    반정균이 김선행에게 보낸 부채

     

     

    전동원 선면 서악화산묘비

     

    ,

    천하에 가장 친밀한 벗으로는

     

    곤궁할 때 사귄 벗을 말하고, 우정의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는 가난을 상의한 일을 꼽습니다.

    이른바 벗이란 술잔을 건네며 도타운 정을 나누는 사람이나

    손을 부여잡고 무릎을 가까이하여 앉은자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벗이 있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나 저도 모르게 저절로 말하게 되는 벗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벗에서 우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박제가 "정유각집" -

     

     

    나는 비록 삼류 선비지만 감히 말하리다.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 덩어리에 있다" 대체로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에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러나 민간에서 담을 쌓을 때 하나 둘 쪼개어 물결무늬를 만들거나 둥근 고리처럼 만들어,

    깨진 기와 조각도 알뜰하게 써먹었기 때문에 천하의 무늬를 여기에 다새길 수 있었던 것이다.

    똥 오줌은 아주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거름으로 쓸 때는 금덩어이라도 되는 양 아까워 한다.

    똥 덩어리를 처리하는 방식만 보아도 천하의 제도가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 박지원, "열하일기" 일신수필 -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 이덕무

     

    금척의 산하 일만 리가 / 金尺山河一萬里

    한양 서울 황도 속에 번성하네 / 漢京翼翼黃圖裏

    황도 한 문안에 큰 도회지 / 黃圖一案大都會

    역력히 펼쳐 있어 손금을 보는 듯 / 歷歷鋪敍掌紋視

    글 맡은 신하 그림에 쓰는 시 지을 줄 알아 / 詞臣解撰題畫詩

    성한 일에 왕명을 받았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 盛事何幸承恩旨

    동월(董越)이 부(賦)를 지은 것 조금 뜻에 맞고 / 董越作賦差强意

    서긍(徐兢)이 그림을 만든 것 어찌 혼자 아름다우랴 / 徐兢爲圖豈專美

    조선 만세의 꺾이지 않는 기초 / 朝鮮萬世不拔基

    문물 번화한 것이 모두 여기에 있네 / 文物繁華盡在此

    … 

    육조와 백사는 여러 관원을 거느리고 / 六曹百司領大小

    팔문과 사교는 멀고 가까운 곳을 통하네 / 八門四郊通遐邇

    팔만여 민가는 오부가 통할하고 / 八萬餘家統五部

    사십구방은 세 저자를 끼고 있네 / 四十九坊控三市

    빙 둘러 돌로 쌓은 성 금구와 같으니 / 週遭石城似金甌

    이것이 왕경의 대략이로다 / 此是王京大略耳

    … 

    북쪽 산은 백악처럼 좋은 것 없고 / 北山無如白岳好

    우편으로 인왕산을 끼었으니 백중과 같네 / 右把仁王伯仲似

    영특한 기운 모여 돌빛이 푸르르니 / 英靈所鍾石氣靑

    그 아래 기이한 선비가 많이 난다네 / 其下往往生奇士

    남쪽 산은 자각처럼 수려한 것 없어 / 南山無如紫閣秀

    푸른 기운 하늘에 솟았으니 하늘도 지척이라 / 翠眉浮天天尺咫

    이것이 달아나는 말이 안장을 벗는 형국인데 / 云是奔馬脫鞍形

    평안도의 봉홧불을 남쪽 변방에 알린다 / 平安火擧通南鄙

    동쪽 산은 낙봉처럼 묘한 것이 없어 / 東山無如駱峯妙

    공자의 사당이 그 기슭에 자리하고 있네 / 玄聖門墻枕其趾

    청계천 한 줄기 북영을 관통하고 / 淸溪一道貫北營

    응암의 왜송(倭松) 푸르러 시들지 않네 / 鷹岫倭松靑不死

    홍정은 세검천을 둘렀으니 / 紅亭繞以洗劍川

    백추지 다듬는 방망이 소리 빈 골짝 울리고 / 空谷砧鳴白硾紙

    외로운 정자 홀로 대명(大明) 하늘을 이니 / 孤亭獨戴大明天

    백대의 청풍 밝고도 깨끗하다 / 百代淸風皎不滓

    세심대 꽃이 필운에 비치니 / 洗心臺花弼雲映

    영광의 빛 천송이 만송이로다 / 寵光千葩與萬蘤

    원각사에 우뚝한 백탑은 / 亭亭白塔大圓覺

    열네 층을 공중에 포개었네 / 層給遙空十四累

    운종가에 있는 흥천사의 큰 종은 / 興天大鐘雲從街

    커다란 집 가운데에 날 듯하여라 / 傑閣堂中翼斯跂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갔다 또 오는 사람들 / 來來去去去又來

    인해가 망망하여 끝이 보이지 않네 / 人海茫茫不見涘

    거리 좌우에 늘어서 있는 천간 집에 / 沿街左右千步廊

    온갖 물화 산처럼 쌓여 헤아리기 어렵네 / 百貨山積計倍蓰

    비단 가게에 울긋불긋 벌여 있는 건 / 錦肆紅綠班陸離

    모두 능라(綾羅)와 금수(綿繡)요 / 紗羅練絹綾縠綺

    어물 가게에 싱싱한 생선 도탑게 살쪘으니 / 魚肆新鱗足珍腴

    갈치ㆍ노어ㆍ준치ㆍ쏘가리ㆍ숭어ㆍ붕어ㆍ잉어이네 / 鮆鱸鰣鱖鯔鮒鯉

    쌀가게에 쌓인 쌀 반과산 같으니 / 米肆隣近飯顆山

    운자 같은 흰밥에 기름이 흐른다 / 白粲雲子滑流匕

    주점은 본래 인간 세상이나 / 酒肆本自人間世

    웅백성홍(熊白猩紅)의 술빛 잔에 가득하네 / 熊白猩紅滿滿匜

    행상과 좌고 셀 수 없이 많아 / 行商坐賈指難僂

    자질구레한 물건도 갖추지 않은 것 없네 / 細瑣幺麽無不庀

    - 조선의 경제가 이전시기에 비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던 18세기 무렵인 1792년 4월.

    여러 신하들과 시를 주고받는 것을 즐긴 정조는 성시전도(城市全圖)라는 그림을 바탕으로

    박제가,이덕무 등 여러명의 신하들에게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를 지어 바치라 명합니다.

    정조의 명을 받은 관리들은 각각 200구 1400자가 넘는 7언 백운(百韻)의 장편시를 창작해서 제출합니다.

    이때 정조는 답안을 직접 평가한 뒤 등수를 발표합니다.

    1등은 병조정랑 신광하(申光河)였고, 2등은 검서관 박제가(朴齊家). 3등은 검교직각 이만수(李晩秀),

    4등은 승지 윤필병(尹弼秉), 5등은 겸검서관 이덕무(李德懋)와 유득공(柳得恭)이었습니다.

    정조는 이들 6명의 시에 직접 어평(御評)까지 남깁니다.

    위 내용의 성시전도시는 이중 이덕무가 쓴 성시전도시의 내용입니다. 

     

     

    활기찬 상업도시 한양, 시장 풍경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 경도잡지(京都雜志)

     

     

    사소절, 아정유고

     

     

    박제가시집

     

     

    燕巖 朴趾源(연암 박지원,1737 ~ 1805)이 쓴 편액 

    咀實其測(저실기측): 열매를 씹어서 (깊이 음미하여) 헤아리고

    (독서/학문에  문장을 깊이 연구하고 체득하여)

     

     

    燕巖 朴趾源(연암 박지원,1737 ~ 1805)이 쓴 편액

    含英之出(함영지출): 그 꽃술을 (입에 머금었던 것을) 뱉어내라.

    (가슴에 간직한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 표출하라)

     

     

     

    파초제시도(芭蕉題詩圖)

     

    값비싼 종이 대신 파초위에 글씨를 연습했다는 한 고사로 인해

    문인들은 파초잎에 시 쓰는 일을 매우 아취 있게 여겼다,

    (이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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