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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산성 청량당(南漢山城 淸凉堂)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5. 2. 12. 05:13

     

     

    남한산성 청량당(南漢山城 淸凉堂)

     

     

     

     

     

     

     

    청량당은 남한산성내 일장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수어장대)의 서편에 위치한 당우(堂宇)로서 이회(李晦)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인조 2~4년 사이에 산성의 동남편 축조공역의 책임자로 있던 이회가 간사한 무리들의 참언때문에

     

    사형에 처해졌는데 그 원혼을 위로 하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남한산성을 축조할 당시 총책임자는 이서이고 동남성 축조는 이회, 서북성(西北城)축조는

     

    벽암대사(碧岩大師)의 승병들이 맡았는데 동남성 축조는 지세의 험악으로 기일내에 완성되지 못하자

     

    이회의 명성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동남성 축조공사가 부진하고 취약한 것은

     

    이회가 공사경비를 주색에 탕진한 때문이라고 참언상소하였기 때문에 즉결 처분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이회는 형장에서 구차스러운 변명을 하지 않고 다만 「사필귀정이니 내가 죽는 순간에 매 한마리가 날아오리라.

     

    매가 오지 않으면 내 죄 죽어 마땅하지만, 매가 오면 내 죄없느니라」하였다.

     

    이회가 절명하려는 순간 과연 하늘에서 매 한마리가 날아 와서

    곁에 있는 큰 바위에 앉아 절명하는 이회를 슬프게 응시하였다 한다.

    이에 비로소 이회의 죄상을 재검토하게 되어 축성공사의 자취를 면밀히 조사해 본 결과

    주색에 탐닉했다 함은 전연 낭설로서 공사가 매우 치밀견고한 것이어서 무고하였음이 밝혀졌다.

    이회는 난공사의 완벽한 추진을 위하여 처첩을 삼남지방에 보내

    축성비용을 모금 전달케 하였을 만큼 갖은 성의를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회의 충성과 무고하게 희생된 원혼을 위안하기 위하여

    당우를 짓고 사시로 제향을 드리며 청량당이라고 명명하였다.

    이회의 사랑하는 처첩(妻妾)들은 남편의 맡은 일을 돕기 위하여 삼남지방에 가서 축성자금을 마련하여,

    광주에 돌아오는 길에 송파강두에서 남편의 원보(怨報)를 듣고 슬퍼한 나머지 몸을 강물에 던져 순사(殉死)하였다.

    청량당에는 옛부터 구정 초 2日을 제일(祭日)로 정하고

    산성일대의 부녀자들이 소원성취의 치성을 올리는 풍습이 전해 오고 있다.

    산성의 동남쪽과 서북쪽 축성을 이회와 분담ㆍ축조하였던 벽암대사의 공적을 기림과 아울러

    호란시 구국을 위해 용전분투하였음도 무위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신하의 맹을 맺고 말았기 때문에

    표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음을 애석히 여겨 이회장군과 함께 합사 하였다.

    청량당 본당은 목조 단층와즙 한식 건물로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면적은108평이다.

    1972년 5월 4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815 남한산성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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