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진시황(秦始皇)과 불로초(不老草)에 얽힌 전설, 서복동도도(徐福東渡圖)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5. 2. 21. 05:30

    진시황(秦始皇)과 불로초(不老草)에 얽힌 전설,

    "서복동도도(徐福東渡圖)"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秦皇島市)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와 우호 협력관계를 증진하기 위하여 기증한

    이 서복동도도(徐福東渡圖) 조각상은 2008년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에 걸쳐 제작되었다.

    그림은 진황도시미술가협회 부주석 우지엔쫑(吳建中)이 그렸고,

    설계는 중국 최고의 미술학부인 중앙미술학원에서 담당하였으며,

    작품 내용은 진시황(秦始皇)이 진황도의 갈석 행궁 앞에서 서복(徐福)에게 동남동녀(童男童女) 600명을 이끌고

    동쪽으로 건너가 불로초를 구해온 것을 명하는 장면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

    제원은 높이가 2.6m, 길이가 4.3m, 두께가 25cn이다.

     

     

     

     

     

     

    제나라 사람 서복(徐福)은 진시황(秦始皇)에게 바다에 봉래(逢萊), 방장(方丈), 영주(瀛洲)라고하는 삼신산에

    신선이 살고 있으니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신선을 찾으러 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상서를 올렸다.

    그래서 진시황은 서복에게 동남동녀 수천명을 데리고 신성을 찾으러 바다에 가라고 명하였다.

     

     

    진시황(秦始皇)은 전국에서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명을 선발하여

    서복을 따라 불로장생약(不老長生藥)을 구하러 바다에 가라고 명하였다.

     

     

     

    서복(徐福)은 불로장생약(不老長生藥)을 구하러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명, 장인 백 명과 오곡(五谷)을 실은

    선단(船團)을 이끌고 고향인 제군 향현 서향(齊郡 黃縣 徐鄕,  지금의 용구시 서복진)에서 출항하였다.

     

     

     

    서복 선단은 온갖 고생 끝에 한반도 일본열도의 여러 지방에 도착했다.

     

     

     

    영주산(瀛洲山)은 전설의 삼신산 중 하나로, 한국 제주도(濟州島) 중부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1,950m의 한라산(漢拏山)을 말한다.

    서복이 동남동녀를 데리고 조천포(朝天浦)에 상륙한 후에 불로장생약을 구하러 영주산에 올라갔다고 한다.

     

     

     

    서복 일행은 제주도에 머무르는 동안 정방폭포(正房瀑布)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자를 새겼다.

     

     

     

     

    서복(徐福)

     

    진시황의 불로장생 꿈을 실현하기 위해 초인간적 미션을 안고 불로초를 찾아 나선 서복(徐福)은 서불(徐巿)이라고도 불리며,

     BC.255(제왕10년) 진(秦)나라가 통일하기 전 제(濟)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서복의 고향은 진나라 당시 제군 황현 서향으로 오늘날 산동성 용구시이다.

    강소성 김유현 서부촌에서도 서복의 고향이라 전해지기도 한다.

    서복은 제나라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연. 제나라의 신선사상 영향을 받으면서

    방사(方士 : 천문, 의학, 신선술, 점복(占卜), 상술(相術) 등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서복은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장생약을 찾아 3,000명의 대선단(大船團)을 거느리고 동도(東渡)하였으나,

    평원광택(평탄한 들과 넓은 진펄)을 얻게 되자 나라를 세우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최종 정착지로 알려진 일본에서 서복은 농,어업,의약, 주거문화, 토기 등

    야오이문화를 창달시켜 일본 경제 사회의 발전을 촉진시켰다고 전해진다.

    서복은 한, 중, 일 우호교류 및 선진문명을 전파한 문화의 사자(使者)로서,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매년 서복을 기리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626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