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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가밀로 부이용(R. Camille Bouillon) 신부의 묘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5. 5. 30. 23:30

    임가밀로 부이용(R. Camille Bouillon) 신부의 묘

     

    감곡성당 설립자이신 임가밀로 부이용(R. Camille Bouillon, 1869.12.19~1947.10.25) 신부는

    프랑스 따르브 교구내 비엘 아쿠르(Vielle Acour)에서 출생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로 한국명은 임가미(任加彌).

    1888년 9월 18일 19세로 대신학교에 입학 1893년 5월 27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19일 조선교구 전교를 명(命)받고 9월 12일 인천(仁川) 제물포에 도착

    이듬해 봄 여주(麗州) 부엉골(부흥골)에서 전교하던중 본당 이전의 필요성이 절실하던차 감곡(甘谷)에 이르러

    동산 밑에 커다란 기와집 한 채를 보게 되었는데 이곳이 본당 건립지로 최적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후 임가밀로 신부는 1896년 12월 5일 사제관 겸 소성당을 건립하고 신자수가 증가하자

    1903년 성당 신축을 시작으로 1904년 10월 2일에는 뮈펨주교 집전으로 축성식과 함께 매괴성모성당을 완공하였다.

    또한, 1907년에는 그리스도적 사랑을 바탕으로 문명퇴치와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하여 매괴학당을 설립하였다.

    뿐만 아니라 1914년에는 지방에서는 한국 최초로 성체 선심행사인 제1회 성체거동을 시작하였다.

    또한 1930년 충북 최초의 고딕성당인 현재의 감곡 매괴 대성전을 완공하였으며,

    본당설정 100주년 해인 1996년 1월 5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고 자주 말한 임가밀로 신부는

    매산의 성모동산에 일본 천왕숭배를 위한 신사(神社)가 들어서는 것을 저지, 중단하게 했으며,

    결국 1943년 일인(日人)들에 의해 서울신학교에 연금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이 광복을 맞이하자,

    고종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태극기를 한일합방 때부터 줄곧 제대 밑에 숨겨 보관하였다가

    광복의 기쁨을 알리며 이 고장에 제일 먼저 태극기를 게양하여 민족정기를 깊이 심어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1947년 10월 25일 오전 10시에 임종하는 날까지 무려 반세기 동안 감곡성당과 함께 하였다.

    현 위치는 매산 중턱으로 평소 신부님께서 눈여겨 보아 두었던 자리로

    사후 36년간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1983년 10월 25일 당시 본당 주임신부인 김광혁(베드로)신부가

    유해를 현 성당 예수성심상 제대 밑으로 이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R. CAMILLUS BOUILLON

    1869.12.19~1947.10.25

    R.I.P

    탁덕임가밀로의묘

     

     

     

     

    임가밀로 신부님 가묘

     

    이곳은 1947년 10월 25일 선종하신 임가밀로 신부님께서 안장되어 계시던 곳이었으나

    1983년 성당 안으로 이장되어 현재 이 자리ㄴ에는 가묘로써 보존되고 있습니다.

    임가밀로 신부님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실 분들은 대성안 예수성심상 제대 아래에 오셔서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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