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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암 박지원의 “허생(許生)”이야기
    국내 나들이/박물관(博物館) 2015. 11. 28. 04:10

    연암 박지원의 “허생(許生)”이야기

     

    가난한 남산골 딸깍발이, 허생

    허생(許生)은 남산 아래 묵적골의 오막살이에 살고 있었다. 그는 글 읽는 선비였으나 몹시 가난하였다.

    아내가 삯바느질을 하여 겨우 입에 풀칠하였는데, 굶주리다 못한 아내가 푸념을 하여

    “과거도 보지 않으면서 책은 무엇 때문에 읽으며, 장사 밑천이 없으면 도둑질이라도 왜 못하느냐”고 대든다.

    허생은 책을 덮고 탄식하며 문을 나선다.

     

     

    변부자에게 만 냥을 빌리다.

    허생은 한양에서 제일 부자라는 변씨(卞氏)를 찾아가 돈 만 냥을 꾼다.

    (실제 인물인 변승업은 조선의 통역관 출신으로 서울 광교 근방에서 일종의 금융업을 하는 부자임).

    변씨는 허생의 인물됨됨이만 보고 선뜻 만 냥을 빌려준다.

    허생은 만 냥을 수중에 넣자, 바로 안성(安城)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가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三南, 충청, 경상, 전라)과 한양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배며, 석류, 귤, 유자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땅 사들였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나라의 형편을 알 만 하구나.”

     

    제주도에 들어간 허생은 이번에는 갓과 망건을 만드는 재료인 말총을 매점매석하여

    또다시 백만 냥에 달하는 많은 돈을 벌었다.

     

    율도국을 만들다.

    변산반도로 간 허생은 나라의 걱정거리인 도적떼를 그 가족까지 모두 모아 서남해 멀리 무인도로 데려갔다.

    평화로운 율도국을 만들어 주고 글 아는 사람들은 데리고 다시 돌아온다.

     

    한양으로 돌아 온 허생

    오랜만에 한양으로 돌아온 허생은 윤종가(종로)를 거닐었다. 예전같으면 “상업이 번성하구나” 감탄하겠지만,

    과일과 말총으로 나라 경제 규모를 알게 된 허생의 눈에는 초라해 보일 뿐이다.

    조선팔도를 두루 다녀보니 정치하는 양반들이 깨치지 못해 사방이 막혀 있었다.

    “수레를 쓸 줄 알고 상공업이 발전하는 나라는 번성한다”

     

    운종가 네거리에 수레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허생은 그 길로 변부자를 찾아가 빌린 만 냥의 열배인 십만 냥을 갚고는 빈손으로 남산골로 향했다.

     

    이완대장을 꾸짖는 허생

    “다섯 해 사이에 어떻게 해서 백만금을 벌으셨소?”

    “우리 조선은 외국과 무역이 없고 수레가 안다니니 모든 물건이 그 안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지 않는가?

    만 냥이면 한가지 물건을 모조리 살 수 있으니 물건 값이 뛰는 것은 당연하지.

    그러니 이것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고 못 살게하는 방법일 뿐이네.”

    선비 허생은 신분이 낮은 변부자가 남산골 집을 찾아오면 벗처럼 지냈다.

    변부자로부터 허생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 어영대장(왕실을 호위하는 대장) 이완(李浣)이 변부자를 따라 허생의 집을 찾아 갔다.

    어영대장 이완을 밖에서 오랫동안 떨며 기다리게 한 뒤 허생이 물었다.

     

    명(明)나라만 섬기는 너희들이 청(淸)을 쳐서 복수하는 북벌을 하겠다고?

    내가 와룡선생을 천거할테니 임금께 아뢰어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어렵습니다.”

    “종실의 딸들을 명나라에서 온 망명객에게 시집보내고 훈척 귀가의 집들을 징발해 그들에게 주어 복수를 도모하게 하겠느냐?”

    “우수한 자제들을 뽑아 머리 깎고 오랑캐 옷을 입혀. 중국에 유학보내고 (중국) 강남에 장사하게 하여

    그들의 허실을 정탐하고 그곳의 호걸들과 결탁하여 천하를 뒤엎고 조선의 치욕을 설욕할 계책을 꾸미겠느냐?”

    이완은 이 세가지 물음에 모두 어렵다고 대답했다.

     

    “나라의 신임받는 관리라는게 고작 이 꼴이야!”

    분을 참지 못한 허생이 칼을 찾아 찌르려 하니 이완은 문을 박차고 달아났다.

    이튿날에 다시 그를 찾아갔으나 허생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집은 비어 있었다.

     

     허생전

    “허생전”은 박지원의 실학적 경륜을 볼 수 있는 문제작이다.

    이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박지원의 시각이 녹아있다.

    상공업을 발전시켜 나라의 경제를 키워야겠다는 생각, 실학의 꿈이 그 하나요.

    병자호란의 치욕을 “복수설치(復讐雪恥)” 한다는 백성 감정을 부채질하여

    “북벌(北伐)”이란 허울 좋은 구호를 내걸고, 백성의 관심을 이에 집중시켜 벌열 집권층의 횡포와

    모순에 눈감게 한 당대 위정자의 무능과 허위를 꼬집어 풍자한 점이 둘이다.

    결국 광통교의 중인 변부자가 주선하여 만나게 된 북촌의 이완대장과

    남산골 허생의 만남은 이렇게 결렬되는 것이 소설 허생전의 현실(리얼리즘)이다.

     

     

     

     

     

     

     

     

     

    연암집(燕巖集)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박지원(朴趾源)의 시문집. 17권 6책. 신활자본.

    1932년 박영철(朴榮喆)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박영철에 의하여 간행되기 전에도 1900년과 1901년 사이에 김택영(金澤榮)의 초간본(원집 6권 2책, 속집 3권 1책)이 나왔고,

    1914년에 다시 초간본 원집과 속집을 합하고 산삭(刪削)한 7권의 중편본(重編本)이 간행되었다.

    그 뒤, 박영철은 박지원의 글을 취사하지 않고 수집가능한 것들을 모두 모으고 박지원의 아들 종간(宗侃) 등이 편집한

    57권 18책의 필사본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여기에다 ≪열하일기 熱河日記≫·≪과농소초 課農小抄≫를 별집으로 더하여 합간하였다.

     

    책머리에 총목록이 있고,

    권1·2는 연상각선본(烟湘閣選本)이라 하여 서(序)·기·인(引)·논·장(狀)·전(傳)·서(書)·묘지명·묘갈명·신도비명·탑명(塔銘),

    권3은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로 서·기·논·장·발·설(說)·소(疏)·책(策)·서(書)·제문·애사(哀辭)·묘갈명·묘지명,

    권4는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으로 시 31편, 권5는 영대정잉묵(映帶亭媵墨)으로 척독(尺牘 : 짧은 편지),

    권6에서 권17까지는 별집(別集)으로서, 권6은 서사(書事), 권7은 종북소선(鍾北小選)으로 서(序)·기·제발·묘갈명이 수록되어 있다.

    권8은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으로 9전(傳), 권9는 고반당비장(考槃堂秘藏)으로 장·기·진향문(進香文)·제문·장계(狀啓)·서(序)·대책(對策),

    권10은 엄화계수일(罨畵溪蒐逸)로 기·발·애사·제문·서(書)·비(碑)·사장(事狀)·잡저(雜著),

    권11에서 권15까지는 열하일기, 권16·17은 과농소초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하일기(熱河日記)

     

    조선 정조 때에 박지원(朴趾源)이 청나라를 다녀온 연행일기(燕行日記).〈연암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26권 10책이다.

    44세 때인 1780년 삼종형 명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베이징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하면서 곳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기록이다.

    당시 사회제도와 양반사회의 모순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담았다.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책의 구성은 크게 2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7권은 여행 경로를 기록했고, 8~26권은 보고 들은 것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박지원은 이 책을 통해 이용후생을 비롯한 북학파의 사상을 역설하고 동시에 구태의연한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는

    경색된 사고방식을 효과적으로 풍자하기 위해 사실과 허구의 혼입이라는 복합 구성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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