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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산악박물관 특별기획전, "산에 들다"
    국내 나들이/박물관(博物館) 2015. 11. 22. 05:05

    국립산악박물관 특별기획전, "산에 들다"

     

    국립산악박물관에서는 2015년 10월 12일(월)부터 11월 29일(일)까지 “산에 들다”를 특별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시는 16~18세기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그림과 작품을 통해 당대 산에 대한 생각과 가치를 들여다 볼 수 있게 꾸며졌다.

    또 이러한 산악문화와 관련된 문화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민족사 중 산에 관한 향유의 역사를 엿보고,

    우리 산을 새롭게 인식하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전시 자료로는 과거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산을 올랐던 기록과 자료들 등 약 60여점이 선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이방운 필 <사군강산삼선수석> 서화첩’, ‘정선 필 <금강산도>’, ‘백운 심동윤 필 <백운화첩>’ 등이 있다.

     

     

     

     

     

    전시회를 열며...

     

    산행(山行)은 시대와 산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의 산행에는 잠시 몸을 담았다는 "입산(入山)"의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산행에는 산을 오르고 정복한다는 개념의 "등산(登山)"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산에 들다"에는 산을 오르고 정복(征服)한다는 개념보다는,

    산에 잠시 깃들어 순응(順應)하던 우리 조상들의 산에 대한 인식(認識)과 자연관(自然觀)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특히 17세기를 전후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산에 들었던 기록과 역사를 되짚어 보고,

    오늘 우리의 산행이 지닌 의미와 인문학적 가치를 발견해보고자 합니다.

     

     

     

    사대부들이 오르는 산

     

    우리 선조들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따라 많은 명산(名山)들을 찾았다.

    경관이 뛰어난 금강산 , 묘향산 등이 유산(遊山)의 대상이 되었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경치가 수려하거나 고도가 높은 산들을 주로 찾은 것은 아니었다.

    사대부들은 성현(聖賢)의 자취가 남아있고, 성리학적 가치의 비중이 큰 경상도지역 산들의 유산기(遊山記)를 비교적 많이 남겼다.

    이는 당시의 사대부들이 성리학적 정신의 체현(體現)으로, 수양(修養)하는 유자(儒者)의 전통과 관련지어 산에 들었기 때문이다.

     

     

     

     

    조선(朝鮮)의 산수(山水) - 육당(六堂) 최남선 강연집(崔南善 講演集)

     

     

    1947년 발간한 조선의 산수는 이조선(裏朝鮮)의 명산(名山), 표조선(表朝鮮)의 名山,

    조선(朝鮮)의 삼해(三海), 그리고 만주(滿洲)의 풍경(風景)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오가산지(吾家山誌)

     

    오가산지(吾家山誌)는 봉강(鳳岡) 이만여(李晩輿, 1861~1904)가 이황(李滉)에 의하여 오가산(吾家山)이라 명명된 바 있는

    청량산(淸凉山)과 관련된 이황의 시문 등을 모은 책으로, 일명 “청량산지(淸凉山誌)”라고 불린다.

    주희(朱熹)가 은거하였던 무이산(武夷山)의 기록물인 무이지(武夷誌)를 모방하여 오가산지를 편찬하였다.

     

     

     

     

    한강집(寒岡集)

     

    정구(鄭逑, 1543~1620) / 조선 선조12(1579) / 가로 39.5cm, 세로 31cm

     

    한강집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집이다.

    문집 내의 유야산록(遊伽倻山錄)은 정구가 1579년 9월 10일부터 24일까지 약 15일간

    가야산 유산노정(遊山路程)을 기록한 일기체 기행문이다.

    쌀가루, 미숫가루, 육포, 말린 꿩고기, 과일 등 산행 식량의 기록 등 세밀한 기술이 표현되어 있다.

    유산 과정의 상세한 사실기록과 학문에 대한 반성과 실천 등 사대부가 갖고있는 사고방식의 변화양상이 잘 드러나 있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정약용(丁若鏞, 1762~1836) / 조선 / 가로 16.5cm 세로 26cm

     

    여유당전서는 조선 후기 정약용의 문집이다. 여유당전서 11권중 “산행일기”에는 쌀과 부식, 솥과 그릇,

    여분의 짚신과 의복, 침구, 문방사우, 읽을 서책 등 조선시대 입산준비물이 기록되어 있다.

     

     

     

    송월재선생문집(松月齋先生文集)

     

    이시선(李時善, 1625~1725) / 조선 / 가로 20cm 세로 30cm 

     

    송월재 이시선(李時善)은 봉화의 대표적인 유학자(儒學者)이다.

    이 문집에는 오악지(五嶽志), 유속리산기(遊俗離山記), 관동록(關東錄),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 등 6개의 유산관련 기록이 담겨있다.

    "유속리산기"에는 산에서 고승을 만나 산과 명승고적의 유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기록이 있다.

     

     

     

     

    유서석록(遊瑞石錄)

     

    고경명(高敬命, 1533~1592) / 조선 선조7(1574) / 가로 17cm 세로 21cm

     

    유서석록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 제봉(霽峰) 고경명( 高敬命)이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간

    전라도 광주 무등산(無等山,瑞石山)을 유람하고 쓴 유산기(遊山記)이다.

    산행 여종과 절에서 숫식을 제공받은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사대부들의 주된 숙박한 장소는 지인의 집, 친분이 있는 관아, 역, 사찰, 서원 등이었다.

     

     

     

    송하대국도(松下對局圖)

    이경윤(李憬胤, 1545~1611) /조선 16세기 /가로 24.8cm 세로 31cm

     

    옛 선인들은 바둑을 두는 것을 수담(手談)이라하여 상대의 감정과

    인격을 확인하는 손의 대화로 여겼고, 정신적 수양의 일환으로 삼았다.

    사대부들이 험준한 산행을 마치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친지나 동학들과 바둑을 들기기도 하였다.

    이것은 학문적 교류의 의미와 함께 입산(入山)으로 깨달은 선현(先賢)들의 말씀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다.

     

     

     

    탄금도(彈琴圖)

     

    이경윤(李憬胤, 1545~1611) / 조선 / 가로 24.8cm 세로 31.3cm

     

    탄금은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것으로 인격수양의 중요한 방편(方便)이었다.

    이경윤의 작품은 꾸밈이 없고 담담한 가운데 정취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명경대(明鏡臺)

     

    김하종(金夏鍾, 1793~ ?) / 조선 19세기 / 가로 43cm 세로 29cm

     

    유당(蕤堂) 김하종(金夏鍾)은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진 김득신(金得臣)의 아들이다.

    이것은 금강산과 설악산 등 명승을 담은 해산도첩(海山圖帖) 중 명경대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 하단에는 선비들이 널찍한 바위에 앉아 명경대를 감상하며 반주(飯酒)와 요기(療飢)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묘길상(妙吉祥)

     

    엄치욱(嚴致郁, 생몰년 미상) / 조선 / 가로 38cm 세로 28cm

     

    고려시대 마애불(磨崖佛)인 묘길상은 금강산 내금강지역 만폭동(萬瀑洞)의 명승지이다.

    실경의 모습과 고적을 감상하는 인물 묘사가 결합되어 풍속화적 분의기를 자아내고 있다.

    사대부들이 산행에서 만나는 산사(山寺) 등 불교유적은 선인들의 발자취이자 문화재로 인식되었다.

    고적(古蹟)을 감상하는 것이 산행의 또다른 이유였음을 보여준다.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사인암(舍人巖) 서화첩(書畵帖)

     

    이방운(李昉運, 1781~1815) / 종이에 옅은 채색 / 조선 19세기 초 / 32.5×26.0㎝ / 국민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이 서화첩은 1802년 청풍부사 안숙이 단양의 명승지와 청풍 관아, 제천 의림지,

    영춘 북벽 등을 유람하고 이방운에게 요청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안숙과 김양지가 적은 발문에는 제작 경위 등이 기록되어 있다.

    화첩 제목인 ‘사군’은 단양, 청풍, 제천, 영춘을 뜻하는 말로,

    현재의 충북 단양과 제천 일대를 잘 나타내고 있어 고증 자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방운은 정선화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감한 구도 배치, 사실적인 묘사보다

    독특한 채색기법의 사용 등 조선후기 회화사에 있어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이경윤(李憬胤, 1545~1611) / 조선 16세기 / 가로 24.5cm 세로 31cm

     

    탁족은 산간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 일로, 전통적으로 선비들의 피서법이자 전신 수양의 방법이기도 하다.

    탁족이란 “濯纓濯足(탁영탁족)”이라는 중국 초나라의 굴원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 굽이치는 물의 맑음이여

    可以濯我足(가이탁아족) 나의 갓끈을 씻으리라

    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 흐르는 물의 흐림이여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나의 방르 씻으리라

     

    탁족은 “세상이 맑으면 갓을 쓰고 벼슬을 하고, 세상이 흐리면 풍진(風塵) 세상에서 은둔하며 자족하라”는 뜻으로,

    인격수양과 처신, 은둔의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탁족도는 정제되고 정형화된 자세로 답습되었는데, 긴 세월 수용된 이 자세는 많은 것을 함축하여 상징하고 있다.

    자신도 고사(高士)들의 경지에 있음을 자부하고 자족하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은 무표정한 얼굴에 발이 시린 듯 발목을 꼬고 있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어,

    고요한 느낌보다 경쾌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느끼게 한다.

     

     

     

    백운화첩(白雲畵帖) - 금강산 신만물상(金剛山 新萬物相)

     

    심동윤(沈東潤, 1759~?) / 종이에 옅은 채색 / 조선 / 32.5×43.0㎝ / 가톨릭 관동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이 서화첩은 금강산, 관동팔경, 소상팔경을 각 8폭씩 담고 있다.

    금강산과 관동지방의 여덟 곳, 중국 하남성 동정호 주변의 여덟 곳을 그린 것이다.

    금강산 신만물상은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왔다고 하는 천선대(天仙臺) 주변의 경관을 의미한다.

    만물상 지역의 한가운데에 높이 우뚝 서있는 천선대는 금강산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으로 예로부터 유명한 명승지이다.

    화폭의 중앙 천선대에 정상부근에는 2명의 여행객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며,

    중턱을 올라가는 1명, 하단에 내려오는 2명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매우 위태로운 듯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의 자세가 거의 엎드려서 올라가고 있다.

    힘겨운 여정이지만 정상에서 호연지기를 키우고 자연의 위대함에 경탄하는 정상의 두 사람을 보면 지금의 등산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백운화첩은 부드러운 필선과 시원한 푸른빛 색조 그리고 민화풍의 풍경묘사가 돋보이는 19세기 금강산 화첩의 수작(秀作)이다.

     

     

     

     

    동여도(東輿圖)

     

    조선 19세기 / 가로 20cm 세로 30cm

     

    총 23첩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의 전도(全圖)이다. 1첩은 목록집이고, 22첩은 각 지역의 지리가 그려져 있다.

    자세한 한반도의 윤곽과 산계(山系), 수계(水系) 등이 수록되어 있다.

    도로나 산줄기가 각 첩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필사 과정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입산, 유산, 산행이 번성한 것과 세밀한 지도가 제작되고 광범위하게 유포, 활용된 시대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천하지도(天下地圖)

     

    조선 / 가로 33cm 세로 18cm

     

    천하지도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세계를 하나의 원에 표기하거나, 중화사상을 반영하여 구도를 배치하였다. 총 10면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 8도를 포함하여 중국, 일본, 유구국(琉球國, 현재 일본의 오키나와)을 그렸다.

    천하의 중심에 조선이 있다는 관점은 우리 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인식변화를 의미한다.

     

     

     

     

    看水看山 看人看世(간수간산 간인간세)

    산을 보고 물을 보며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

     

    - 조식(曺植), 유두류록(遊頭流錄) 남명집(南冥集) 권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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